홍익인간 인성교육

분에 넘치는 일 (홍익인간 인성교육 3907강)

홍익인간 인성교육 2025. 2. 26. 11:55

https://youtu.be/71hLTcnhcV0?si=AJ-VKDFKbhTaQ4ZC

정법 강의 3907강

 

우리가 건강을 어렵게 해 놨을 때는, 네가 공부하라고 해 놓은 것입니다

내가 건강이 왜 어려워졌느냐? 내가 잘못 운용한 만큼 내 건강이 나빠지는 것입니다.

생각을 잘못하고, 잘못 운용을 하면, 내 건강을 어렵게 만드는 원인이 되는 것입니다.

내 건강이 어려우면 뭐든지 무리하게 하려고 들지 마라고, 지금 건강을 어렵게 해 놓은 것입니다.

그런데 일을 무리하게 하면 건강을 더 어렵게 해 버립니다. 왜? 그래야 무리하게 안 하겠죠.

자연이 운용하는 법칙을 알아야 됩니다. 건강을 어렵게 할 때는 조금 쉬거라 하는 것입니다.

쉴 때는 뭐 하라고 쉬라고 하느냐? 네 질량이 모자람을 갖추어라.

갖추고 해도 늦지 않느니라. 이렇게 하는 것입니다.

건강이 어려운데, 자꾸 일은 해야 되고, 막 더하려고 하면, 너는 어려움을 풀어줄 수가 없습니다.

일을 하더라도 질량 있는 이념을 갖고 일하고, 질량 있는 생각으로 일을 접하느냐?

질량 없이 접하느냐는, 이 힘든 게 하늘과 땅 차이가 납니다.

일을 하려고 하는 것하고, 이 일을 이루어서 수입을 보려고 하는 것은 다른 것이라는 것입니다.

일은 일하는 것이지 수입 보는 게 아닙니다. 수입은 수입 보는 것이지, 일하는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일과 수입을 지금 동시에 같이 한다고 생각을 하는데, 일은 일하는 것이고,

수입은 날 거면 나는 것입니다. 그 난 것을 어떻게 잘 쓰느냐는 그 뒤의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뭔가 사업을 하면서 접근하는 방법들이, 나는 큰걸 한다고 하는데,

큰 것을 예를 들어서 조금 이해되게 내가 조금 말씀드릴게요.

내가 지금 큰 몇 조짜리에 연결돼 갖고 일을 한다. 

그러면 내가 지금 어느 정도 되는 사람이어야 그것을 연결해 갖고 일을 하는 게 맞냐?

아무리 안 해도 몇 천억짜리는 돼야 됩니다. 네 지금 환경이 질량이 몇 천억짜리도 안 되는 게,

조짜리로 넘어가는데 내가 대면, 이 질량이 튕겨나면 튕겨나지, 이것은 한참 착각하는 것입니다.

내가 만일에 200억짜리를 추진하고 있다. 그러면 네 질량이 얼마나 돼야 되느냐?

몇십억짜리는 돼 줘야 됩니다.

몇십억짜리를 추진하는 사람이, 지금 경비도 좀 걱정이 되어 잘 안 돌아가고,

뭔가 내가 하고 싶은 것도 마음대로 못하고 있고, 이런 사람이 200억짜리가 일이 된다?

한참 착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200년 가도 안 됩니다. 이것은 무조건 안 되는 것입니다.

내 분수를 알라. 그렇다고 내가 200억짜리 추진 못 하는 게 아닙니다.

질량은 있으니까 그런 게 보이고 오지만, 네가 지금 할 수 있을 때냐? 나를 보라는 것입니다.

내 일은 어떤 일이 내 일이냐? 이 한 단에서 이 위의 것이 내 일입니다.

이것을 해 내야 그다음 것을 가는 것입니다.

내가 몇 억은 소화되는 사람이다. 그러면 십 억대, 몇 심 억대 일은 할 수 있습니다.

몇 천만 원은 내가 소화가 되는 사람이다. 그러면 내가 몇 억대는 할 수 있습니다.

몇 천 먼 정도는 이렇게 이렇게 내가 어렵지 않다. 하지만 억 대는 어렵다.

이러니까 억대 일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러면 이것을 이루어낼 수 있습니다.

3대 7의 법칙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의 질량은 70% 내 기운이 왕성해야, 그다음 30%를 만지는 것입니다.

내 질량은 30%인데, 70%짜리를 만지면 너는 압사한다. 이 말입니다.

이것이 자연의 운영의 법칙입니다.

이것을 모르고 달려들면, 인생을 허비하고 젊음을 다 없애고,

시간을 내버려 버리고, 나중에 후회한다. 이 말입니다. 자연의 법칙을 좀 알고 해야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탐이 나지만, 압사할 짓은 하지 말아야 됩니다. 원리가 있는 것입니다.

무슨 큰 일을 한다고, 남 보기에는 좋은 것 같지만, 너는 거기에 눌립니다. 그 일은 안 됩니다.

주위의 사람을 동참시켜서, 그 사람들까지 힘들게 하고, 시간 낭비를 하게 해서,

그 대가는 네가 받아야 됩니다. 네가 굉장히 어려운 환경이 일어나서, 남한테 나를 다 보여줍니다.

대가를 지불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남한테 거름이 된다 이 말입니다.

그렇게 하면 안 된다 하는, 이것을 가르쳐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몸도 아파서 자빠지기도 하고, 그러는 것입니다.

이 사회는 지금 0.1미리도 틀리지 않게 운용되는 사회입니다.

과거에는 네 멋대로 해도 되는 사회입니다. 정법 시대에는 그렇지 않습니다.

후천 시대는 그렇지 않습니다. 유리처럼 맑아지는 사회입니다.

네가 잘못한 것은, 잘못된 것은, 네가 책임져야 할 것이고,

잘한 것은 빛이 날 것이고, 정확하게 대가가 돌아옵니다.

잘못한 대가도 너한테 돌아오고, 잘한 대가도 너한테 돌아옵니다.

이런 사회가 정법 시대입니다. 후천 시대.

이제 홍익인간들이 틀리게 살 수 없는 시대다. 이 말입니다. 이것을 모르면 안 됩니다.

이것을 지금까지 공부시킬 수 있는 환경은 주었는데, 공부를 못 한 것입니다.

언제부터? 우리가 교회에도 한참 갈 때가 있었고, 절에도 한참 갈 때가 있었습니다.

수련을 찾을 때도 있었고, 오만 데를 다 쫓아다녔습니다. 이때 공부할 시기입니다.

이때 이런 공부를 다 해 놨어야 되는데, 이것은 기초밖에 안 됩니다.

이것이 기초 공부이기 때문에, 사찰에서도 사람을 오라고 문을 열었다면,

이 사람들이 오면, 앞으로 살아갈 이런 공부를 시켰어야 되고, 교회도, 성당도,

수련장에도 갔으면, 이런 공부를 시키는 게 근본이고, 다른 것은 방편입니다.

몸이 아파서 왔으면, 공부를 시켜야 되고, 아픈 걸 낫게 해 주는 것은 방편이다 이 말입니다.

그걸 못 낫게 해 줍니까? 낫게 해 줄 힘이 있는데. 나한테 오면 낫는 게 당연하지요.

그다음 왜 저 사람을 아프게 해서 내 앞에 오게 했던가?

이 근본을 한 치도 못 들어가는, 이래서 중생이라 하는 것입니다.

2,30년 동안 전부 다 공부를 시킨다고, 엄청난 물결이 흘렀는데도, 전부 다 빌기만 하고,

무릎 꿇고 기복이나 하고, 공부는 하나도 안 돼 있는 것입니다.

내가 산에서 수행을 마치고 거지로 이 세상에 나와 보니,

세상이 어떻게 이렇게들 해 갖고 시간 낭비를 하는가? 그래서 이 사람이 나오게 된 것입니다.

공부를 하라고 했지, 어찌 무릎 꿇고 빌라고 했던가? 누구의 장난입니까?

이 홍익인간들이 자라고 있는데, 무릎을 꿇는 비굴한 자들을 만들어 갖고, 결국은 이 땅이 어떻게 됩니까?

기상을 가지고 일어나서, 인류를 위해서 향해야 되는 것을, 아무것도 모르고 어떻게 인류로 나갈 것입니까?

하나하나 바르게 잡아야 되는 것입니다. 나 혼자는 안 되는 것입니다.

이제는 인연들을 잘 만나서, 서로가 의논 동참해서, 서로가 가지고 있는 힘을 융합해서,

이렇게 해서 사회에 접근을 해야 되고, 일해 갖고 내가 성과 올린다는 생각은 하지 마십시오.

절대 그렇게 주지를 않았습니다. 저마다 소질을 줬다는 것은, 

행할 때는 뭉쳐야지, 이것이 빛을 발하는 것입니다.

저마다 소질을 갖고 자라게 해 놨다는 것은, 너 혼자서는 일 하나 처리를 못 하게 해 놓은 것입니다.

적어도 3면, 여기서 많아지면 5명, 여기서 더하면 7명,

이렇게 뭔가 사람 인연들을 만나서 의논하고, 여기서 연구를 해서, 사회에 바르게,

우리가 노력을 해서 사회에 바르게 접근을 해 갖고 사회에 들어가야, 일이 되게 돼 있는 것입니다.

이제 융합 시대입니다. 개인 시대가 아닙니다. 개인으로 사회에 접근을 하면,

네 생각과, 너의 아이템과, 너의 이런 힘으로 사회를 1인이 접근을 하면,

이 사회의 밀도가 너무 커서 네 것을 안 받아줍니다.

이 원리를 이해하기 잘 되게 하나 풀어보면,

지금 텔레비전이 됐든, 방송 이런데, 기라성 같은 박사님도 나오고, 대단한 사람들이 나와서,

이렇게 아나운서가 묻기도 하고, 사회자가 묻기도 하니까, 요새 거기에다가 많은 이야기를 합니다.

이 사람들이 말을 하는데, 우리 가슴속에 들어올 말이 있던가?

이 사회 가슴에 들어오고, 이 사회에 깊이 들어갈 말이 한 명도 없습니다.

소리니까 들리기는 하죠. 들리는데 안으로 안 들어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청률이 떨어지는 것입니다. 들었는데 들으나 마나입니다.

이것이 왜 그러냐? 이 원리를 우리가 알아야 됩니다.

그 사람의 주장이거든요. 네 논리이고, 너의 생각이고, 

네가 정리한 것을, 네 것을 지금 가지고 나온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지금 오늘날 이 70% 성장한 이 사회에서는 누구든지 그것을 들으면 들립니다.

그런데 그 깊이에 한 자도 못 들어온다. 이 말입니다. 왜? 밀도의 질량이 약합니다.

우리는 전부 다 밀도가 가 성장돼 있기 때문에, 내가 1 대 1 밀도입니다.

미디어에서 당신이 말을 하는데, 우리는 여럿이 미디어를 보지만,

우리 접하는 사람들은 전부 다 1 대 1로 접하는 것입니다.

1 대 1 기운 갖고는 나를 뚫지 못한다. 지금 이때가 온 것입니다. 70% 성장은 같이 한 것입니다.

그래서 1 대 1 기운은 같기 때문에, 이것은 나를 감흥 시킬 수 없습니다. 이 말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되느냐?

박사 한 사람이 다룰 주제를 가지고, 지금 3명이 모여 가지고 다루세요. 연구를 하세요.

이 주제를 갖고 너희들이 연구하고 의논하고, 노력한 질량이 이 안에 들어가면,

이것을 들고 한 사람이 나와서 여기서 풀어내면, 밀도의 질량이 달라졌습니다.

우리한테 확 들어옵니다. 들리기만 하는 게 아닙니다. 질량이 다릅니다

이래서 국민들한테 먹히고, 이 사회에 먹히게 돼 있습니다. 이 원리를 지금 모르는 것입니다.

못하는 게 아니고, 방법론을 몰라 가지고, 자기도 가서 한 시간 동안 지껄이고 왔는데,

아무런 대가도 못 일으키고, 사람들이 존경도 안 하고,

나는 성심껏 이야기를 다 했는데, 안 먹히는 것입니다.

이제 스님이 나와서 해도 안 되고, 목사가 나와서 해도 안 되고, 사회에 밀도가 들어가지를 않습니다.

이것이 1 대 1 질량이기 때문입니다. 

잘난 사람이 아무도 없고, 못난 사람이 아무도 없는 세상입니다. 노력한 대가는 분명히 일어납니다.

적어도 3인이 모여라. 둘이는 연구했다. 융합했다. 소리 안 하는 것입니다.

샛은 융합이 됩니다. 다섯 융합은 또 다릅니다. 일곱이 융합을 해서 꺼냈다면,

이 밀도는 밀도의 질량이 다릅니다.

30인이 모여서 연구한 작품이 이 땅에 나왔다면 이것은 밀도가 다릅니다. 사회가 받아줍니다.

박사들 300명이 같이 연구를 해서 이 세상에 작품이 나왔다면,

이 밀도는 대한민국을 들썩거릴만한 밀도가 나옵니다.

혼자 잘났다고 하지 마십시오. 네가 잘났으면 나도 잘났습니다. 이런 사회입니다.

이것을 잘 알아야 됩니다. 왜 이런 공부를 지금 해야 되느냐?

지금 개개인이 전부 다 착각을 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나 혼자 큰 일을 할 수 있느냐? 아닙니다. 질량의 법칙이 있기 때문에 질량이 있어야 됩니다.

질량이 약한 사람이 그것을 만지고 있으면, 그것을 딴 사람이 손댈 수 있는 것을 방해해서,

내가 물고 있다가 그것이 안 돼 버리면, 다른 사람도 일을 못하게 한 꼴이 되기 때문에,

그 대가는 네가 받는다. 그게 어려움으로 작용이 오는 것입니다.

저거는 맨날 큰 것만 한다고 그러더니, 사는 게 왜 저 모양이냐?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짓거리는 어느 정도 손을 놓는 게 좋습니다. 일단 내가 살기가 편한 것부터 해라.

아무리 큰 게 좋지만. 네 힘을 먼저 쓸 수 있게끔, 먼저 이것부터 해아.

이 기본적인 힘을 가지면, 그다음 것은 능히 처리할 수 있습니다.

이만한 일을 처리하면 이만한 일이 되고, 여기서 또 이만한 힘으로 그다음 것을 해야지,

이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면, 전부 다 고생을 하면서, 잘못되면서,

남한테 거름으로 교과서 인생을 살게 됩니다. 큰일 납니다.

나도 이렇게 물으면, 당신도 이렇게 하면 잘됩니다. 그러면 인기 있을 줄 압니다.

그러나 지금은 눈 감고 아웅 할 때가 아닙니다.

내가 당신이 그러면 안 돼하고 바르게 가르쳐줘서,

이 바르게 가르쳐주는 것을, 내가 사심이 들어있다면 잘 안 들립니다.

하지만 이렇게 가르치는 것이, 사심이 없는 옆의 사람들은 공부가 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바르게 가르치니, 나를 직시하고 다스려 들어가면,

너한테는 직접 성불이 들어간다. 이것이 하늘의 법칙입니다.

내가 물었다면, 잘못됐다면, 아픈 곳을 꼬집어주고, 찾아주고, 깨워달라고 물은 것이지,

나한테 조금 좋은 말 해 주고, 기분 좋게 해 달라고 물은 게 아니라는 얘기입니다.

내가 미워서 도망을 갈지라도, 말은 바르게 해야 되는 게,

이게 세상을 가르치러 나온 사람입니다. 

이해를 이렇게 하십시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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