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익인간 인성교육

수행과 진리 (1/5)(홍익인간 인성교육 3901강)

홍익인간 인성교육 2025. 2. 28. 11:02

https://youtu.be/XQnD3c0ZngI?si=5b3sLJFQDN8R5VPA

정법 강의 3901강

 

공부하는 건 참 좋죠. 스님이 됐든, 수행자가 됐든, 공부하는 건 참 좋습니다.

공부를 할 때는 우리가 돕는 게 무엇인지를 신중하게 생각해야 됩니다.

공부할 때 먹을 걸 갖다 주고, 막 챙겨주고 하면, 그 사람 공부 끝났습니다. 공부 안됩니다.

공부할 때는 뒷받침을 해 주면 안 되고, 자기가 칡뿌리를 캐 먹든 뭐를 하든,

내가 그런 자작을 못 하면, 누구한테 딱 굽히든 이렇게 하며 공부하는 것입니다.

누가 대접하는데 뭔 공부가 됩니까?

우리 수행자들이 지금 전부 다 어떻게 해 갖고, 지금 깨친 자가 안 나오냐 하면,

산에 들어가서 조금 뭔가를 하면, 도사님인가 싶고, 스님도 뭔가 대단한가 싶어, 뭐를 자꾸 갖다 줍니다.

갖다 주고 하니까, 처음에는 보살님 고맙습니다. 이럽니다.

나중에 백일만 갖다 주면, 안 오면 왜 안 오나 이럽니다.

백일 갖다 주다가 안 갖다 주면 혼내려고 듭니다.

이것이 뭐냐 하면, 사회에서도  시누이가 자꾸 돈을 꿔 달라고 하니까, 자꾸 꿔주잖아요.

몇 번 꿔주고 그다음에 안 꿔주면, 올케 욕합니다.

처음에 꿔달라고 할 때 안 꿔줬으면 욕은 안 합니다.

몇 번 꿔줬으면, 나를 버릇을 나쁘게 만든 게, 올케, 너입니다.

나는 꿔 갖고 뭐든지 해결하다 보니까, 다르게 해결할 방법이 없어집니다.

계속 꾸러 갔는데, 안 꿔주는 것입니다. 여기에다가 뭐라 하는 것입니다. 있으면서도 안 꿔준다고.

내가 있는 것하고, 너 꿔주는 것하고 무슨 관계가 있는데?

있으면서도 안 꿔준다고, 올케가 참 나쁜 사람이라고 그럽니다.

내 것은 내가 관리해야 되고, 네 것은 네가 관리해야 되지.

지금 수행자들한테 뭔가를 자꾸 갖다 주면, 똑 같은 것입니다.

이 수행자들이 어떻게 해서 산 같은 데 가는지 원리를 조금 알아야 됩니다.

수행자가 원래 산에 들어가는 게 아닙니다.

일반 사회에서 어떤 인연을 줬는데, 인연을 주니까, 여기서 내가 공부를 찾지 못하고,

상대들이 하는 것을 조금 불편해한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사람들하고 같이 안 놀려고 저리 간다는 말입니다.

저쪽에 가니까 또 내 멋대로 안 되니까, 또 저쪽으로 가고, 

저쪽에서 내 멋대로 안 되니까 또 저리로 간다는 말입니다.

그래 가지고 산 쪽으로 조금씩 가는 것입니다. 가다가 보니까 나중에 절간에 들어갑니다.

절간에 가서도 내 멋대로 안 되고, 자기들 규칙을 따지고 하니까, 거기서도 나옵니다.

나오다 보면 어디로 가느냐? 자기 혼자 오두막을 하든지, 땅굴을 파든지, 혼자 들어가는 것입니다.

혼자 들어가면 어떤 일이 있느냐 하면, 누구 간섭을 안 받습니다.

간섭을 안 받으려고 들어간 것이거든요. 간섭을 받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외톨이가 됩니다.

들어가서 처음에는 간섭을 안 받으니까 좋죠.

조금 있어 보니까, 먹을 걸 누가 안 갖다 주니까, 또 어려운 것입니다.

그러니까 자급자족을 해야 되죠. 육신을 그렇게 만들어 놨으니까, 먹을 게 없으면 기어야 됩니다.

그래서 쌀을 좀 얻으러 사찰에 갑니다.

사찰에서 간섭하는 것은 싫어하면서 쌀은 왜 얻으러 갑니까?

그래 가지고 이제 이것도 안 되니까, 나무뿌리도 캐 먹고, 칡뿌리도 캐 먹고, 

약초를 먹기 시작하고, 열매를 따서 저장을 합니다.

산에서 공부한다는 사람들이 뭐를 하느냐 하면,

나 혼자 먹고살기 위해서 하루종일 작업해야 됩니다.

옷도 네가 빨아 입어야 되고, 뭐를 한 개를 해도 네가 다 해야 되고,

그러니까 하루종일 일을 해도 먹고사는 것밖에 안 합니다. 혼자 자급자족하니까.

저녁이 되면 시간이 조금 있으니까, 앉아서 이러고 있습니다.

뭔가 도가 열리는가 싶어서. 이것이 수행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밤에 자시 되면 이렇게 있으면 된다 싶어서, 또 이렇게 앉아 있습니다.

앉아 있으면 하늘에서 뭘 주려나? 이러고 있습니다. 어깨에 힘은 왜 들어갑니까?

밤 되면 자지, 버티고 앉았고, 새벽이 되면 새벽에 줄까 싶어서 앉아 있습니다.

낮에는 또 자기 먹고살려고 열심히 일하고, 이것이 다입니다.

그러다가 네가 10년 있다가, 먹고살려고 바둥거리다가 나온 것이고,

밤에 뭘 주려나 앉아 있다가 나온 것이고, 아무것도 한 것이 없습니다. 수행은 무슨 수행입니까?

수행은 내가 밭에 일을 하면서도 수행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남이 입던 옷을 벗어 놓으면, 전부 다 빨아가며 수행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허드레일 하면서, 어떤 사람은 나무를 해 오면서, 남이 따듯하게 자도록 불을 때면서,

내 수행을 하는 것입니다. 왜 그 사람이 입던 옷을 내가 빠냐?

내가 그 사람들한테 잘난척해서 이렇게 어려워진 것 아니냐? 이 말입니다.

잘났다 하다가 보니까, 어려워진 것입니다.

내가 어렵게 안 살려고 수행하는 것이지 않습니까?

네 모순이 무엇인가를 찾고 나면, 죄송하고, 부끄럽고, 내가 숙여지는 것입니다.

이째부터 수행하는 것입니다.

머리를 바짝 들고, 잘났다고 해서 남한테 섞이지도 못하고, 나 잘났다고 전부 다 피해 다니던 게,

혼자 고립돼 갖고, 얼마나 살기가 어렵냐?

인간하고 살아야 되는 놈이, 인간하고 살지도 못 하고 얼마나 외롭냐?

자아 깨달음이 수행입니다. 자아 깨닫는다고 하니까, 이상하게 끌고 가서,

우리나라 국민들은 자아 깨닫는다고 하니까, 대단한 걸 갖다 연상을 시킵니다.

네 고집이 얼마나 세더냐? 자아 깨달음을 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잘난 척을 하고 사느냐? 나한테 얼마나 모순이 많은 가를 깨닫는 게 자아 깨달음입니다.

사람들한테 잘났다 한들, 너한테 득이 있더냐?

오늘날에 너한테 그렇게 많이 준 사람들 중에서, 네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있더냐?

나 잘났다고 살다가 보니까, 내 사람이 한 명도 없습니다.

나를 깨닫고 보니까, 너무 부끄럽고 창피하다 보니까, 이제부터 나한테 주는 일이라면,

말없이 그것을 닦아주고, 수행은 이 바닥 청소부터 하는 게 수행입니다.

그래서 수행을 할 때는, 단체로 수행하러 들어가면, 빗자루부터 손에 딱 들려주는 것입니다.

빗자루 주니까 처음에는 좋다고 예 하고 받았습니다. 조금 있으니까 배에 기름기가 살살 오릅니다.

밥도 이제 안 굶어도 되지, 왜? 거기에 밥 해 주는 사람이 있거든요.

처음에는 배 고플 때니까, 부엌에 들어가서 공양주한테도 고맙습니다. 그러다가,

나중에 배에 기름기가 좀 차잖아요, 뭘 좀 하다가, 정신이 없어 너한테 신경 안 쓴 것도 아닌데,

저쪽에는 뭘 주고 여기는 뭘 안 줬습니다. 이제 봅니다. 거기는 뭘 주고 여기는 안 줬다 이거지요.

나는 식은 밥 줬다 이겁니다. 이제 감정이 딱 생기는 것입니다. 저게 나를 미워하나 보다.

쌀밥, 보리밥이면 어떻습니까? 초발심을 생각해라 이 놈아.

나한테 잘 안 해준다고, 그것과 감정 사고, 이것을 없애려고 수행시키는 것입니다.

왜 상대가 나한테 뭘 해줘야 되는 건데? 내가 상대한테 해 주는 것은 행이 되지만,

상대한테 내가 행을 받으려고 하는 것은, 빚을 지는 것입니다.

빚진 만큼 네가 안 갚아도 될 것 같으냐? 사람은 조그만 일이라도 빚을 지고 나면,

분명히 내가 갚아야 됩니다. 이 세상에 갚아도 갚아야 됩니다.

우리가 왜 아픈지 알아야 됩니다. 어려워 오는지, 아파 오는지.

네가 잘났다고 남 탓하고, 네가 삶을 바르게 못 살면, 이것이 조금씩 조금씩 쌓여서,

내가 아파오고 어려워 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냥 저 사람을 조금 마음 아프게 했다고, 그냥 지나가면 되는 줄 알지만,

이것은 정확하게 쌓입니다.

이런 것들이 조금씩 조금씩 쌓여서 어떤 질량이 되면, 나를 치러 들어오는 게 자연입니다.

이런 자연의 법칙을 우리가 공부를 안 하고서는, 깨달을 방법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깨달으려면, 엄청난 충격 속에서, 내가 죽음을 앞두고 깨닫는 것입니다.

죽음을 앞두고 내가 이렇게 못났음을 깨닫는 것입니다.

그것을 깨달았으면 이제부터 무릎을 꿇어야 되고, 고개를 들지 말아야 되고, 땅을 쳐다봐야 됩니다.

내가 못났으면 세상에 고개를 안 들어야 됩니다. 못난 사람은 절대로 고개를 들면 안 됩니다.

얼마큼? 내가 30% 못났다 그러면 30% 숙여야 됩니다.

고개를 숙이고 항상 사람 얼굴을 제대로 보면 안 되고,

숙이고 봐도 보이잖아요. 이렇게 잠깐씩 봐야지, 많이 보면 안 됩니다.

내가 50% 못났으면 더 숙여야 됩니다. 내가 70% 못났으면 확 더 숙여야 됩니다.

숙여 가지고 70% 밑을 보면 사람 무릎까지만 보입니다. 이러고 살아야 됩니다.

얼굴을 제대로 보면 그것은 반칙입니다.

 

2편에서 계속.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