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 스승, 성불 (2/2)(홍익인간 인성공부 3867강)
https://youtu.be/OJyaoyGXJJM?si=BtzRJAXaVAmtbh1_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중소기업들이 헤매고 있는, 저 3D 업종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죠.
이게 얼마나 보물인지 모릅니다. 이 나라에서 하찮은 기술들을 가지고,
지금 적자를 보면서 운용하고 있는, 저것이 얼마나 귀중한 보물인지 모르고 있습니다.
저것을 어떻게 쓰면 이 사회가 어떻게 달라지고, 인류가 어떻게 달라지는지 그것을 모릅니다.
이것이 참 미련한 것입니다. 이 나라는 세계에서, 인류에서 최고 희망적으로 만들어 놓은 나라입니다.
이제는 이 나라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갖고, 인류의 질서가 잡히고, 인류 평화가 오고,
이렇게 할 수 있는 질량을 다 갖춰 놓은 나라입니다.
우리 국민들이 얼마나 소중한 사람인지 지금 모르고 있습니다.
스승님이 나와서 둘러보면서, 항상 봉하고 부채하고 2개를 들고 다니며,
봉을 들까? 부채를 들까 이것을 고민하며 다녔습니다.
스승님이 세상을 살펴보고, 안 되면 들어가 버리려고 살피다, 몇 번을 들어가려다 못 들어갔는데,
그다음부터는 내가 안 들어가고 세상에 나오겠노라 선포를 해 놓고,
봉을 들까, 부채를 들까? 이것을 걱정했습니다.
왜? 하늘에서 나한테 내려온 게 천금이 내려오고, 부채가 내려왔으니까.
부채를 들 때는 정장을 하고 나설 것이고, 천금을 들고 다니려니까, 무기를 들었다고 잡혀가겠고,
그래서 천금 대신 봉을 만든 것입니다. 천부경을 새겨 가지고, 이 봉을 손에 쥔 것입니다.
내가 이 봉을 쥐면 누더기를 입을 것이고, 내가 부채를 들면 정장을 하고 나올 것입니다.
정장을 하면 아주 지적으로 다스릴 것이고, 누더기를 입고 나오면, 후드려 패면서 세상을 만들 것입니다.
두 가지 중에 지금 무엇을 해야 될지, 그것을 고민한 것입니다.
결국은 뭐냐? 봉도 부채도 다 들어야 되겠습니다.
팰 때는 패고, 보살필 때는 보살피고, 인자할 때는 인자해야지, 한 가지라도 놓고는 안 되겠다.
그렇게 시작하는 것입니다. 스승님이 혼낼 때는 혼을 내도 받아들이기만 하면 그다음에 선물을 줍니다.
내가 굉장히 어렵다는 것은, 네가 잘못 살았기 때문에 어려운 것입니다.
인간은 절대로 바르게 사는데 어려워지는 법칙은 없다. 이것이 자연은 그렇게 빚어놓은 것입니다.
내가 잘 배웠든 못 배웠든, 내가 어려워지는 것은, 네가 바르게 못 살아 갖고, 경과를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잘못한 것은 내가 뭐라 할 것은 뭐라 해야 됩니다.
그것을 달게 받아들이면, 그 뒤에는 너를 이끌어 주고, 힘을 주고, 보살펴 주는 것입니다.
그런데 잘못했는데 뭐라 하니까 팩 돌아섭니다. 그러면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가거라.
나하고는 상관없는 것입니다. 뭐라 하는 것을 못 받아들이면, 도와줄 수도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 앞에 무릎을 꿇고, 신께 도와주십시오 하면, 신이 입이 없어서 너한테 잘못한 것을 가르치지 못합니다.
그래서 부처가 필요한 것입니다. 부처가 되기 위해서는 수없이 목숨을 바쳐 가면서,
그 고행 속에서 공부를 해야만 부처가 됩니다.
그렇게 가르쳐서 내 대역으로 세상에 내놓고, 백성을 가르치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천신입니다.
그래서 백성을 접하는 사람이 부처이고, 이것은 스승이 되는 것입니다.
백성을 잘 가르치고 이끄니, 그다음에는 자연이 할 일을 해서, 백성들을 다 쓸어 담아 줄 수가 있습니다.
무엇 때문에 어려워진지도 모르고, 내가 잘못이 뭔지도 모르면, 너를 어떻게 풀어줍니까?
선천 시대에는 그래서 제자들에게 임시방편으로 조금씩 풀어줄 수 있는 힘들도 줬습니다.
이렇게 선천 시대를 가다 보니까, 모순이 더 많이 나오고, 그래서 후천 시대가 다가올 때는,
방편으로 쓰는 것도 어느 정도 걷어버려야, 이제 바른 길을 찾지요.
그래서 요새 절에 가서 그만큼 절을 해도, 108배해도 안 듣고, 3000배 해도 안 듣고,
평생 절해도 안 듣고, 무릎이 까지면 까졌지 안 듣습니다. 이제 임시방편을 쓸 때는 지났다는 말입니다.
이제는 교회에 가도, 그런다고 듣는 게 아닙니다. 이제는 한 땀을 해도, 내가 왜 어려운지 공부를 해라.
공부를 하며 노력하면, 네 노력한 만큼 분명히 네 어려움을 풀어줍니다.
성불이 아주 정공법으로 우리한테 들어와야, 우리 인생에 도움이 되는 것입니다.
스승님한테 이렇게 와 가지고, 되게 아프고, 되게 어려워서 오면, 스승님 법문을 듣고,
내 잘못을 이해하고, 눈물도 나고 하니까, 네 몸이 낫지 않더냐?
네가 어려운 게 풀리지 않더냐? 어떻게 30%는 풀어줍니다.
왜? 이제 네 잘못을 한 개라도 알고 눈물을 흘리니까, 그러면 풀어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공부를 꾸준히 좋아서 하니까, 그다음에는 내가 상생을 하며 살아야 되는 걸,
너무 이기적으로 내 답인 줄 알고, 이것이 세상에 맞는 줄 알고 산 것을 바꾸려 노력을 해서,
조금만 이렇게 행을 달리 해도, 이제 2차적으로 성불이 갑니다.
너희들이 사회를 원망하는데, 너희들이 사회를 위해 살아본 적은 있느냐?
사회를 위해서 살지는 않아 놓고, 사회를 뭐라 하면 되느냐?
사회는 너희들을 키웠습니다. 너희들이 커 가지고, 사회를 위해 살려고 생각해 본 사람 있느냐?
그러고 지금 사회를 욕하고 뭐라 한다는 말이냐? 그러니 어려워지죠.
이제는 뭔가 차근차근 풀어야 됩니다. 나라가 나를 키웠고, 사회가 나를 키웠다면,
내가 성장을 했으면, 내가 사회를 위해서 성장을 안 하면 사회는 망합니다.
나를 키운 것은 내가 사회를 위해서 일을 할 수 있게끔 힘으로 만들어 키운 것입니다.
그런데 다 커 놓고 사회를 위할 줄 모른다면, 그때는 사회가 답이 없습니다.
우리가 에너지를 쓰는 질량이, 과거에는 전화를 해서 10원짜리 동전을 넣어서 했습니다.
그리고 동전 떨어질까 봐 빨리 하고 그랬습니다.
질량을 우리가 써도 작게 쓰며 성장을 했기 때문에, 사회가 우리를 뒷바라지하며 키울 수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사회는 어떤 사회냐 하면, 화장실에서 큰방으로 전화합니다.
이것을 뭘로 하느냐 하면 시외전화로 합니다. 마당에서 방으로 전화합니다. 이것을 그냥 서슴없이 합니다.
차를 타도 벤스 타는 사람, 조금 금 갔다고 안 타는 사람. 질량을 엄청나게 소모합니다.
너희들이 그만큼 사이즈가 크고 질량이 크다는 얘기입니다.
거기에 다 대주면서 지탱할 수 있는 사회가 아닙니다.
내가 질량을 쓸 정도가 됐으면, 너희들이 사회를 위해서 뭔가를 할 때도 됐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우리 삶이 원활하게 에너지가 돕니다.
그런데 우리가 사회를 위해서 일은 안 하고, 나 먹고살고, 내 것만 찾고, 이렇게 하면서,
사회가 잘못된다고 욕만 하고 있으면, 너를 칩니다. 당연히. 왜 어려워지는지 근본을 모릅니다.
내가 이 사람한테 바르게 행한 적도 없으면서, 이 사람을 나무라면 내가 맞습니다.
바른 짓 안 해 놓고, 바른 짓 했다고 알고 있고, 그쪽에 또 잘못되니까 그것을 뭐라 하면 내가 얻어터집니다.
지금 자연의 법칙을 너무 모르는 것입니다. 공짜가 없습니다.
우리는 질량을 먹은 만큼 질량을 갚아야 된다는 것도 자연의 법칙입니다.
우리가 이 사회를 안 만지면 절대 좋은 사회가 안 됩니다.
우리가 살아가야 되는 땅입니다. 앞으로 살 일이 걱정인 것입니다. 노력 안 하면 안 됩니다.
이제 스승님이 정확하게 이 사회를 사는 방법을 가르쳐 가면서 이끌고 갈 것입니다.
나하고 같이 갈 사람만 그렇게 할 것입니다. 우리가 좋아지면 더 오겠죠.
그래 가면서 전부 다 하나가 돼 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살고 싶지 못살고 싶은 사람이 이 땅에 한 명도 없습니다.
우리가 좋아지면, 이것을 배우러 옵니다. 작은 그룹이라도 너희들이 좋은 것, 조그만 것이라도,
나오기만 하면, 전부 다 이것을 배우러 다 오게 돼 있습니다.
남을 탓하기보다는 나부터, 우리부터 살기 좋은 세상을 만들어 나가야,
왜 그렇게 살기 좋은지, 이걸 배우러 다 옵니다.
우리가 어렵게 사는 것은 전부 다 끝났습니다.
3년만 우리가 노력을 해야 우리 삶도 좋아지겠죠.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