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집과 주장이 더 세진 정법 병 (1-2) (홍익인간 인성교육 4769, 70강)
지금 이 시대는 우리가 지식을 갖추고 상식을 접하고 모든 상식에 매이는 시대입니다.
상식이 무엇인지 조금 알아야 됩니다. 어떤 논리가 더 크게 지식의 기운을 만들고,
이 질량이 좋아지면 결국은 상식을 만드는 것입니다. 지식이 자꾸 다져져서 상식이 된다는 말입니다.
지금 이 시대는 상식의 시대입니다. 상식은 논리의 지식으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진리가 아닙니다. 진리는 절대로 굳지 않습니다. 상식은 굳어갑니다.
어느 정도 올라올 때까지는 좋은데, 어느 정도 올라오면 상식으로 굳어 변하는 것이 논리의 지식들입니다.
일반 지식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사회 지식입니다. 그래서 전부 다 상식에 묶이게 되면,
이제 갑갑하고, 미치고, 새로운 것을 찾는데도 눈 뜨고 봉사입니다.
마음의 눈을 가린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상식 이상을 절대 보지 못합니다.
이것이 오늘날 대한민국 홍익인간들이 겪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정법을 만나면 어떻게 되냐?
정법을 만날 때는 내가 미칠 때 만나는 것입니다. 몇 번이고 죽고 싶다가 만나는 것입니다.
상식에 갇혀 살면, 지식인은 미쳐 죽고 싶어 집니다.
우리가 지식을 갖추고 상식을 접할 때까지는 올라오는 중이기 때문에 안 미치는데,
상식에 접하게 되면, 여기서 갇혀 갖고, 시간이 지나가면, 이제부터는 올라갈 수가 없어서 미치는 것입니다.
갇혀버립니다. 이것이 오늘날의 지식인들은 상식에 갇혀있는 지식인들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갑갑하다가 진리를 만납니다. 진리의 지식이 정법입니다.
이 사람이 내놓은 가르침은, 진리로 오늘날의 너희들에게 맞게끔, 이것을 정리해서 내주는 것입니다.
내주면 어떤 일이 벌어지냐? 상식이 무너집니다. 녹아내립니다.
이렇게 딱딱하던 상식이 전부 다 흐물흐물하게 다 무너져 내립니다.
그러니 좋아 미칩니다. 감옥에서 풀리는데 안 좋겠습니까? 상식에 갇힌 것도 감옥입니다.
감옥 중에 최고 감옥은 상식에 매이는 것입니다. 여기서 풀려나는데 안 좋겠습니까?
이 정법을 만나서 좋았던 것은, 이것이 우리가 초발심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정법을 만나서 처음에 한 백일 동안, 일 년 동안 얼마나 좋았습니까?
세상에 목숨이라도 내놓을 것 같이 너무 좋은 것입니다.
왜? 감옥에서 풀려나는 이 쾌감은, 내가 막혔던 것이 뽑혀 나가는 이것은,
네가 고착됐던 이런 피를 뽑아내고, 새로운 것을 생산할 수 있다는 것은,
내 영혼이 살아나는 것입니다. 영혼이 갇히면 미치는 것입니다.
인간은 물질인 이 육신이 있고, 이 안에 내 영혼이 들어앉아 있습니다.
우리가 사물을 보면서 받아들입니다. 듣고 받아들이면 어디로 가는지,
우리가 과학 시대이고, 지식 사회이니까, 이것을 전부 다 풀어 나가는데,
머리에 가서 골이 이것을 해결해서 다시 말을 꺼내는 줄 압니다.
물질이 다 하는 줄 안다는 말입니다. 물질은 비물질을 만질 수 없습니다.
내가 보고 느낌을 갖다 넣는 것은 비물질 에너지입니다.
이것이 어디까지 가느냐? 물질인 이 육신을 통해서 내 영혼까지 가는 것입니다. 영혼까지 전달이 돼서,
영혼이 이것을 만져서, 새로운 생각을 일으킬 재료를 내 영혼에서 내보내는 것입니다.
영혼에서 내보내서 이 감각을 생각할 수 있는 곳으로 보내서 여기서 정리하면서,
밖으로 나오는 이것은 또 비물질 에너지인 지식이 나오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 홍익인간들은 자연의 법칙을 공부하면서 나부터 알아야 됩니다.
내가 누군지, 어떤 상태인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이 연장은 어떻게 쓰고 있는지, 이 원리를 깨야 됩니다.
내 영혼은 지식을 먹고 성장하고, 진리를 먹고 그 밀도를 채웁니다.
내가 지식을 먹고 윤회를 하면서 일반 지식을 갖추면서 네 영혼이 성장해도 밀도가 없습니다.
상식까지 오는 지식을 가지고는 성장은 다 하는데, 밀도가 안 생긴다는 밀입니다.
그래서 이 영혼에 밀도가 없으면, 다른 것을 생산하지 못합니다. 지혜가 안 나옵니다.
물질 에너지도 근본 에너지 갖고는 다른 물질이 생산이 안 되듯이,
여기서 밀도가 생기면 여기서 다른 것을 생산합니다. 이것이 지혜입니다. 이것을 몰랐던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정법을 흡수하는 것은, 자연의 법칙을 진리로 풀어주는 지식입니다.
우리는 이 자연의 법칙 한 개를 풀기 위해서, 천 년을 몇 번이나 윤회해 오면서,
고생하면서, 도 닦는 사람들이 이렇게 하고 있습니다.
지식인들이 이 만큼 성장하기 위해서 수없이 윤회를 하면서 이렇게 커 온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전부 다 풀어서 준다는 말입니다. 너희가 닦아서 언제 그것을 깨치겠습니까?
풀어서 다 주는 이 진리의 지식을 우리가 다 흡수하는 것은,
너의 다 자라고 골다공증에 걸린 네 영혼에 밀도를 채워 주는 것입니다.
이 밀도가 차야 새로운 생각이 일어납니다. 이것이 지혜입니다.
우리가 이 진리를 접하니 너무 좋으니까, 갇혀 있던 것이 열리는 것입니다.
간이 큰 것이 아니고, 좋아서 응축되어 있던 게, 이제 힘을 쓰니까, 간이 큰 것 같은 것입니다.
안 보이던 것이 보이고, 죽고 싶던 것이 안 그럽니다.
죽고 싶은 병만큼 큰 것이 없습니다. 죽고 싶은 것은 지식인들이 죽고 싶은 것입니다.
무식한 놈은 안 죽고 싶습니다. 왜? 그래도 살려고 합니다.
지식인들은 멀쩡한 것이 죽고 싶습니다. 그것 만큼 큰 병이 없습니다.
진리를 만나고 내가 막힌 것이 풀리니까, 이제는 세상 진짜로 용기 내어 살고 싶어지는 것입니다.
살아야죠. 지금까지 윤회해 오면서 이렇게 고생을 했는데,
내가 고생 끝에 낙이 오는 것을 모르고 죽으려 하면 되나요?
지금부터 즐거운 일이 생길 것인데, 왜 죽습니까?
우리는 이 즐거움을 맛보려고 수없이 윤회한 것입니다.
아직은 이 세상에 즐거움을 맛본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이제부터 즐거움을 우리는 높여야 되는 때입니다. 이것이 홍익인간들입니다.
이 즐거움을, 우리가 즐거워서 하는 일을, 또 이런 에너지를,
인류 만방에 내줘야 되는 그런 홍익인간들입니다. 우리가 즐거워야 됩니다.
스승님이 공부를 시키면서, 제일 많이 해 놓은 소리가 있습니다.
겸손해라. 네가 지식을 얻었거든 그때부터 겸손해라.
그런데 이것을 빼먹고 공부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좀 풀리니가, 아주 갑갑해서 죽을 판일 때는 막 이러다가,
이제는 안 죽어도 되고 좋은데, 기운이 조금 차니까,
스펀지가 바싹 말라 기운이 없을 때는 죽어지냈는데,
진리로 기름을 부어 놓으니까, 이것이 벙벙해져서, 이제는 전의 버릇이 다시 나옵니다.
네가 왜 이렇게 어려워졌는지 모르더냐? 사람에게 겸손할 줄 모르고 너 잘났다고 하다 보니까,
이것이 바싹 마르게 됐는데, 지금 진리로 네가 무장하고 힘이 갖추어지고 있는데,
또 그때 버릇을 다시 합니까? 또 어려워집니다.
그렇게 하지 말라고 가르쳐주고 있는데, 나는 해야 될 진짜 공부는 안 하고,
자기가 필요한 것만 달랑달랑 주워 먹고, 천지도 모르고 날뜁니다. 또 어려워집니다.
갑갑해집니다. 왜 갑갑한지 이 원인을 찾아내야지,
어째 질량이 좋아지는데 갑갑하다는 말입니까? 진짜 해야 되는 공부를 시킨 것이고,
다른 것은 전부 다 진리로 지식을 가르쳐주는 것이고, 네가 해야 되는 공부는 수련입니다.
어떤 수련을 하는 것이냐? 네가 천지도 모르고 잘났다 하던 것을, 잘났다 하지 않는 수련을 해라.
네가 겸손하지 못하게 살던 것을, 겸손하게 사는 법을 네가 수련을 하십시오.
다른 것은 스승님이 전부 다 기운을 주고 가르쳐 줄 테니까,
너 자신의 못남을, 너 자신의 모순을 찾아서, 이것을 바르게 잡는 수련을 하십시오.
그 수련이 바르게 되면, 하늘에서 너에게 힘을 줍니다. 그러고 백성들을 이끌어라.
이렇게 가르치는데 수련은 안 하고, 지식 나부랭이 좀 안다고, 또 고개를 들고 나 잘났다고 합니다.
이 진리의 지식을 먹으면 어떻게 변하느냐?
우리가 정법 공부를 하루에 강의 3개씩만 들으면, 딱 백일만 듣고 나면 어떤 일이 생기냐?
10년, 20년, 30년 내가 무릎을 꿇던 자리에 무릎이 안 꿇어집니다.
저분이 아주 진리를 이야기하는 것처럼 내가 들었었는데, 진리가 아닌 것이 내가 다 보입니다.
나에게 가르쳐 주니까, '예, 스님' 하던 게 이제는 안 됩니다.
왜? 당신들이 나에게 가르쳐 주는 것이 너무 질이 낮아서, 나에게 다 들킵니다. 그것이 안 됩니다.
돌멩이에게 절을 하고, 그렇게 매달리던 것이 그렇게 안 됩니다.
네가 질이 높아지면, 질 낮은 짓은 안 합니다.
이것이 안 됩니다. 자동으로 안 됩니다. 이것이 인간입니다.
일반 지식과 상식으로 나를 가르치던 것이, 내가 분별이 다 나니까 너무 약한 것입니다.
내가 까닥하면 건방져집니다. 이렇게 된 것입니다.
저런 것을 지식인 줄 알고 있는 저 백성도, 네가 쓸어안아야 될 사람입니다.
너희도 그러고 있지 않았느냐? 그 사람들을 아끼고 사랑하는 생각을 해야지,
그 사람들을 멀리 하고, 그 사람들을 낮게 봐서 되겠습니까?
그런 사람들이 있기에 너희가 공부를 하고 실력을 갖추는 것입니다.
몽매한 중생이 있기에 내가 실력을 갖추어서 그 사람들을 위해서 살아야 되는 것 아닙니까?
그 사람들을 위해서 사는 것이, 내가 잘났다고 하면 나를 따라올 것 같습니까?
네가 실력이 있어도, 그 사람에게 가서 아픔을 잘 만져 주면서 가까이 대할 때,
그 사람이 나를 믿고 따르는 것이고, 그때 내가 이끌어 주면 가는 것입니다.
네가 겸손할 때만 상대가 너에게 마음을 열어줍니다.
네가 겸손해야 상대가 너에게 마음을 열어 주는 것입니다.
너 잘났다고 다가오면, 상대가 마음의 문을 안 열어줍니다. 들어갈 틈이 없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후천 시대가 올 때, 인간 말종이 사는 시대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럴 때 홍익인간들이 와서, 세상을 만지는 기법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내가 철저히 겸손하고, 상대를 아끼고 사랑할 때, 그 사람들이 마음을 열어서 나를 따름을 알아야 됩니다.
초발심을 입지 마십시오. 내가 어려울 때 이 법을 만나서 얼마나 좋았습니까?
내가 에너지가 조금 찼다고 해서, 건방이 넘치면 되겠습니까? 아직 멀었습니다.
네가 3년을 초발심을 잊지 말고, 또 잡아가면서, 또 갖추고 갖추십시오.
이 세상에 네가 별이 될 것입니다. 처음부터 날뛰지 마십시오.
사람을 아끼는 그 마음만 가지고 세상을 보십시오. 안 보이던 것이 보일 것입니다.
그래야 지도자가 되는 것입니다. 초발심을 잊지 마십시오.
스승님 법을 만나, 초발심에 그렇게 좋았다면, 그것을 유지하는데 3년은 가야 됩니다.
너는 영혼이 맑디 맑아져서, 세상이 다 보이게 되어 있습니다.
네 영혼이 탁하면, 자연에서 주는 큰 힘을 쓰려고 하면, 네가 다칩니다.
하늘의 힘은 아무나 쓰는 것이 아니고, 나 자신을 맑혀서 그 힘을 쓰는 것입니다.
그것이 땅에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탁한 자가 맑은 힘을 쓸 수 있다는 생각 자체를 버리십시오.
감사합니다.
초발심을 잊지 않고,
겸손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