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익인간 인성교육

아이들의 인성교육 (1/3) (홍익인간 인성교육 4558강)

홍익인간 인성교육 2022. 10. 23. 11:59

 

정법강의 4558강

스승님은 지금 무엇을 가르치냐 하면, 세상의 진리를 가르치는 것입니다.

근본적인 가르침, 기초 교육인데, 아이들에게 안 가르칩니다.

여기는 사회대학원 가르침을 주는 곳입니다. 어른들을 공부시키는 곳입니다.

우리 아이들은 왜 안 가르칩니까?

아이들은 이 세상에서 배울 게,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 나왔던 모든 정보가 증명되어 있는 지식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 지금까지 역대로 살아오면서 전부 다 정리해 놓은 지식을 학교에 다닐 때 배우는 것입니다.

이것은 습득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엇이냐?

지금까지 노력했던 진화를, 이 정보를 이전해서 진화를 시키는 것입니다.

기본 정보를 전부 다 흡수하는 게, 지금 만들어져 있는 학교들입니다.

학교에서는 정보를 흡수하는 것이고,

역사에 인류가 살았던 모든 환경들을 정리해 놓은 것을 물려받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전부 다 물려받아서 어느 정도 채워지고 나니까, 사회공부를 이제부터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이들 때는 이런 공부를 시키는 것이 아니고, 학교에서 주는 정보를 계속 흡수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절도 있고, 어떤 상식도 있고, 모든 것을 정리해 놓은 것이 있으니까,

이것을 먼저 물려받고 나서 이 사회에 나오면, 이 사회에 것을, 또 지금 일어나는 것을,

우리가 흡수하는 공부가 되는 것입니다. 인성교육은 시킨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우리가 바르게 사는 원리를 공부하는 것이 인성교육입니다.

그것을 지금까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러니 인성교육은 따로 시키는 것이 아니다 이 말입니다.

지금 인성교육이 안 돼서, 지금 세상에 패륜도 일어나고, 이렇게 한다고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패륜이 일어나는 것은 이 사회가 그렇게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사회의 총체적인 문제가 어떤 사람들로부터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인성교육을 안 시켰기 때문에 그런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인성교육이라는 것을 아직까지 제대로 잡은 적이 없습니다.

인성교육을 시킨다는 것이 예절교육을 시킵니다.

예절교육을 시키는데, 부모님 말을 잘 듣고, 누나 말을 잘 듣고, 맨날 이러는 것입니다.

누나 말은 안 들어야 됩니다. 부모님이 지금 잘못된 행동을 하고 잘못된 행동을 하는데,

그 말을 들으면 어떻게 됩니까? 그러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인성교육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어른들의 편리성으로 자식들을 이끌고 가는 것은 인성교육이 아닙니다.

그것이 지금은 내 편리성으로 끌고 가는데 좋을지는 몰라도,

이것이 내 아이가 나이가 들어서 사회에 접근을 했을 때, 어떤 일도 실패를 해서 어른을 아프게 합니다.

이것은 뭐가 잘못되어 가는 것입니다.

어른은 자식들이 이 사회에 일어나는 모든 환경들을 잘 접할 수 있도록 뒤에서 협조를 잘하는 것입니다.

이 사회가 학교입니다. 이런 데 용기를 주고, 이런 것을 조금 의논해 주고,

이런 것을 뒷바라지를 해 주고, 이렇게 하는 것이 어른의 몫입니다.

지금 태어난 우리 아이들은 우리 자식이 아닙니다. 이 사회의 자식입니다.

그런데 내가 꼭 키워야 된다는 생각을 하는 자체가 욕심입니다.

 

이것을 질문이 나왔으니까, 거기에 대답을 하기보다는 하나 크게 풀어 봅시다.

자식에게는 우리 부모님이 신입니다.

신이 어떻게 형성되는지를 오늘 내가 조금 풀어줄 테니까,

신은 따로 없습니다. 자식에게는 하느님도 없고, 신도 없습니다.

우리 부모님이 신인 것입니다. 왜? 내가 젖이 필요한데 젖을 우리 부모님이 주지,

내가 우니까 우리 부모님이 달래주지, 내가 목욕을 해야 되는데 부모님이 목욕을 시켜줍니다.

신이 안 시켜줍니다. 내가 배가 고프니까, 밥을 주는 것도 우리 부모가 주는 것입니다.

우리 부모님이 나를 위해서 해 주니까 부모님이 나의 신인 것입니다.

그런데 애가 조금 큽니다. 조금 크니까 어떻게 되냐? 교육의 방법이 달라서,

내가 아이가 배워야 될 공부를 내가 안 해 봤기 때문에 내가 못 시켜 줍니다.

그래서 유치원에 보냅니다. 내가 다 못해 주니까, 유치원에 가서 유치원 선생님에게 배웁니다.

그러니까 이제 신이 어떻게 되냐? 반신이 되는 것입니다.

부모가 반신이고, 유치원 선생님이 반신이 된 것입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신이 두 개가 된 것입니다. 그래서 조금 더 자라니까,

유치원 선생님이 내가 필요한 것을 다 못해 줍니다.

이제 초등학교에 보냅니다. 초등학교에 가니까 유치원 선생님은 이제 내 신이 아닙니다.

초등학교 선생님이 내 신이고, 부모님이 내게 해 줘야 될 게 있으니까, 또 두 신입니다.

이것이 무슨 소리냐? 사람에게는 나에게 이롭게 해 주는 분이 나의 신입니다.

내가 하지 못하는 것을 상대가 해 주면 나의 신이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년이 되어 어른이 되고 나니까, 이제 학교에서 가르칠 것은 다 가르치고,

우리 부모님이 뒷바라지해 줄 것을 다 해 주고, 우리가 커버렸습니다.

커버리니까 부모님이 뒷바라지 안 해 줘도, 내가 먹을 것을 내가 벌 수 있습니다.

부모님이 이제 그것을 안 해 줘도 된다는 얘기입니다.

그래서 부모님이 이제 내 신이 안 됩니다. 이때 어디로 가냐?

정신적으로 뭔가 필요한 것이 있다, 이럴 때 부모님에게 물으니까 못 해 줍니다.

또 학교 교수님에게 가니까 못 해 줍니다. 못 해 주니까 어디로 가냐?

목사님 찾아가는 것입니다. 거기에 가니까 성실하게 얘기를 좀 해 줍니다.

그러니까 못 듣던 소리를 들으니까, 목사님이 내 신이 되는 것입니다.

그럴 때는 하느님이 내 신이 아닙니다. 목사님이 내 신입니다.

어떤 사람은 스님이 내 신이 됩니다. 어떤 사람은 수련 도장에서 내 신이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내 신께서 뭐라고 하느냐 하면 하느님에게 빌라고 합니다.

내가 이 분을 따르니까, 이 분이 자꾸 하느님에게 무릎 꿇고 자기도 빌고 합니다.

이 분이 하느님을 믿으라고 하니까, 이 분 따라서 하느님을 믿는 것이지, 하느님은 지금 네 신이 아닙니다.

이 분이 부처에게 돌멩이 놓고 절하면 된다고 하니까, 이 분이 시켜서 하는 것이지,

그 부처가 내 부처가 아닙니다. 우리가 뭔가 착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깨야 됩니다.

내가 어렸을 때 나를 위해서 노력해 주는 그 분만이 나의 신이 되는 것입니다.

사람은 최고의 신입니다. 사람이 해결하지 못하는 것을 찾으려고 허공에 쫓아가는 것입니다.

사람이 다 해결해 주면, 나는 다른 신을 찾을 필요가 없습니다.

왜? 다른 신은 전부 다 자기 할 일을 해 주고 있기 때문에, 내가 찾아갈 일이 없다 이 말입니다.

신과 인간관계입니다.

네가 헤매니까, 어디서 빌라고 하니까 빌었지, 내가 원래 그 신을 아냐?

아직까지 이 세상에는 신을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신은 인간이 최고의 신입니다. 인간이 신이고 나에게는 내가 최고의 신장입니다.

나에게는 내가 1 신이고, 나를 수호해 주는 신장들과 신들은 2 신입니다.

나 자신을 버리는 자는 다른 기운에 흔들리고, 이끌려 다니다가 내 인생을 못 사니까,

네 인생을 못 살고 떠나면, 너는 떠돌이 귀신이 되고, 또 차원계에서 헤매고 사는 것입니다.

영혼이 떠돌아다닌다는 말입니다. 나 자신을 지켜야 됩니다. 나 자신.

그리고 우리 아이들에게 인성을 가르치려고 노력하지 마십시오.

내가 할 일을 바르게 찾아서 바르게 하면, 아이들은 신께서 바르게 이끌어 줍니다.

내가 아는 방법으로 자꾸 주입을 시키려 들면, 애는 나 닮아 갑니다.

그래서 애가 잘못되는 책임은 내가 져야 됩니다.

내가 아는 방법으로 주입을 시키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무서운 짓을 지금 하느냐 하면,

내가 아는 것은, 오늘날 내 인생을 살기 위해서 배운 것입니다.

우리 아이들은 아이들 인생의 미래가 기다립니다.

그런데 내 방법으로 가르치면, 아이들이 자기 길을 찾아서 자기 인생을 못 삽니다.

자연은 흐름대로 가는 것입니다. 아이들은 아이들의 앞으로 인생이 있기 때문에,

그 길을 스스로 찾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그것을 뒷바라지만 해 주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최고의 공부입니다. 애들을 이끌어주고 가르치는 것은,

자기가 자기 길을  찾아가게끔 만들어 주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뒷바라지해 주는 것입니다.

내가 아는 방법으로 가르치면, 전에 아주 질량이 약할 때 가졌던 질량으로 가르치면,

그 질량으로 사회를 살아야 되는데, 애들이 성장을 하면 사회는 바뀌어 있다는 말입니다.

그런 교육은 엄청나게 무서운 결과를 낳습니다. 애들은 억지로 가르치는 것이 아닙니다.

내 방식으로 가르치면, 애들이 인생을 사는데 방해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언제부터 우리 아이들이 지금 세상을 헤매고, 갈 길을 못 잡고 헤매느냐 하면,

우리 지식인들이 우리 방법으로 가르쳤기 때문입니다.

우리 엄마들이 우리를 어떻게 가르쳤느냐?

학교 갈 때 됐다. 끝입니다. 깨워주는 것으로 끝납니다.

그리고 밥 주는 것으로 끝났지, 우리를 안 가르쳤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잘 자란 것입니다. 지식을 잘 갖추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렇게 자란 우리가, 아이들에게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가르칩니다.

애들은 지금 우리가 시키는 대로 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 닮지.

지금 오늘날 우리 젊은이들이 살아야 될 세상은 다른 세상인데,

우리 삶을 살면 큰일인 것입니다. 앞길이 안 보이는 것입니다.

교육을 잘못 시킨 것입니다. 지금은 어른 교육인지, 애 교육인지 갈 길을 모릅니다.

애들 학교 보내면, 숙제해 오라고 보냅니다.

어른이 컴퓨터로 다 찾아서, 다 해 줘서 가지고 갑니다.

이것은 어른 숙제인지, 애 숙제인지? 보통 일이 아닙니다.

시간은 가고 있는데, 엄청나게 가르침을 받아야 되는 시간은 지나가고 있는데,

시간을 내 버리고 있는 것입니다.

애들은 논하지 말고 나 자신을 갖추십시오,

내가 할 일을 바르게 하면, 애들은 저절로 되고 있습니다.

애들은 가르치려고 들지 마십시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