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오랫동안 팔다리가 시렸다 (홍익인간 인성교육 13080강)
    홍익인간 인성교육 2023. 11. 6. 11:26

    https://youtu.be/E8WH07G7kpw?si=MEUYYkenfctz1VMk

    천공 정법 13080강

    우리는 인간이라서 몸을 아프게 해 놨습니다.

    언제 아프게 해 놨냐? 잘못할 때 아프게 해 놓은 게 우리 몸입니다.

    어떤 부분을 아프게 할 때는 무엇을 잘못한 것일 것이고, 어떤 부분을 안 좋게 해 놨을 때는 어떤 부분을 잘못한 것이고,

    이런 것을 전부 다 구분하게끔 아픔이 옵니다.

    내가 마음이 아픈 사람은 무엇을 잘못하고 있어서 그렇다. 답이 있는 것입니다.

    아픈 사람은 왜 아픈 벌을 주고 있느냐? 공부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인간에 아픔을 주는 것은, 네가 성장하라고 공부시키고, 

    나는 희생을 하면서 주위를 발전시키고, 네 주위가 성장하게끔 공부를 시키면서,

    이런 것들을 하면서, 순환이 일어나면서 이 지구를 성장시키는 것입니다.

    인간은 성장시키기 위해서 인간으로 온다는 사실입니다. 인간은 물질로만 생긴 게 인간이 아니고,

    동물 육신에다가 내 영혼이라는 신이 들어와서, 합체가 되어 인간입니다. 그래서 사이 간자를 쓰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이라는 것은 신도 어니고 동물도 아닙니다. 인간입니다. 중간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교육은 왜 시키냐? 네 영혼이 성장하는 게 교육입니다.

    네 영혼이 성장하게끔 교육을 시키는 것이지, 육신을 더 좋게 하는 교육을 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육신을 하나의 방편으로 쓰면서, 이 육신과 네가 더불어 할 수 있는 게 많기 때문에, 육신과 하나를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육신이 느끼는 것 하나하나가 교육입니다. 우리 영혼은 느끼는 게 아주 작습니다.

    육신이 있기 때문에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육신에서 느끼는 하나하나가 영혼으로 보내는 것입니다.

    왜 자꾸 보내느냐? 깨달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무엇을 깨달으라 하는 것이냐? 자꾸 들어가야 연구가 됩니다.

    네가 원죄로 잘못했을 때, 하나하나 일어나는 게 이렇게 만지면 된다. 원죄라는 게 왜 생겼을까?

    네가 신으로, 원소로 있을 때, 우리는 탁해져서 지금 천지창조가 일어나게끔 돼 있는 원죄라는 소리가,

    원죄가 어떤 것일까?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살면서 느끼는 게, 원죄에서 죄라고 하면 이런 것을 다 얘기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으로서는 느낌을 못 주는데, 하느님이 물질을 만들어서 우리를 여기에 장착시켜 놓으니까 다 느끼는 것입니다.

    잘못을 했을 때 느끼는 것, 잘못은 어떻게 잘못을 하나? 상대가 없으면 잘못하는 게 없습니다.

    그래서 인연을 준다는 것입니다. 인연을 줘서 느낌이 일어나게끔, 여기서 잘못했을 때 어떤 환경이 일어나게끔,

    전부 다 인간 육신과 영혼이 합체되어 이 작업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우리가 이 작업을 해야만 되느냐? 이런 것을 전부 다 만지면서, 몰랐던 것은 이렇구나, 깨달았다.

    또 더 질량 있는 것을 또 깨달았다. 이렇게 내가 영혼을 깨달으면서 가니까,

    네가 인간으로서 마지막 일생을 살고, 이 육신을 걷고 나서 내가 천상으로, 우주로 가면,

    내가 느끼고, 깨닫고 바르게 잡았던 그 힘이, 일천 배 확장되어 신으로서 쓸 수 있는 힘을 줍니다.

    천지창조가 일어날 때, 지금 우리 원소들이 탁해서 내몰린 것입니다. 30%만 탁해져서 떨어져 나온 것입니다.

    이것을 전부 다 다시 맑히고 재생을 해서 본의 자리로 가야 됩니다.

    너희들이 탁한 것이 왜 탁한지 깨닫지 못하면, 왜 천지창조가 일어났는지도 깨닫지 못하고,

    내가 신으로서의 내 역할을 못하고, 마무리를 못하면 원시반본이 안 됩니다.

    우주는 운행이 되는 것 같지만 지금 스톱되어 있는 것입니다.

    대우주는 스톱돼 있고, 소우주의 물질 세상이 운행되고 있는 것인데,

    대우주의 아주 거룩한 대자연은 운행이 안 되고 스톱되어 있는 것입니다.

    3대 7의 법칙으로, 이것이 30%를 뽑아서 지금 운행되는 세상을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몸이 아플 때는, 내 잘못 없이 아픔이 오지 않습니다. 이것을 알아야 됩니다.

    지금 이해는 다 안 되더라도, 내 잘못이 없이는 몸이 아플 수가 없습니다.

    몸이 아프니까 잘못했다고 빌어라. 그게 아니고, 내 몸이 아플 때는 내가 잘못 살고 있다는 신호를 주는 것이니까,

    빨리 받아들여서, 모르긴 해도 내가 잘못한 것을 받아들이니 이끌어 주십시오 하면서, 노력을 한다고 하니까,

    네 몸을 안 아프게 해 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노력도 안 하고 짜증이나 내고,

    자기가 어떻게 나으려고 달려들면, 해 봐라 하고 놔둡니다. 자연에는 섭리가 있는 것입니다.

    내가 아플 때는 나를 위해서 하는 것이지, 남을 위해서 하는 게 아닙니다. 

    그러면 나는 고마운 것입니다. 그런데 아픈 것을 갖고, 하느님에게 고맙다 하기는 더럽게 안 됩니다.

    나를 깨닫게 하기 위해 내 마음을 아프게 하면, 내가 고마운 것인가요 아닌가요?

    뭐든지 나에게 이 포맷을 갖고 더 나은 것을 만들라고 지금 하고 있는 것이지,

    이것은 나를 벌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가르쳐주는 것입니다.

    남을 힘들게 했느니라, 그런 너는 네 방식으로 힘들게 하지 않았다고 자꾸 그렇게 사니까,

    그러면 네가 좀 힘들어 봐야 하지 않겠나? 이래서 아픈 것입니다.

    내 행동이 이기적인 게 너를 아프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잊으면 안 됩니다. 답입니다.

    그런데 이런 것을 찾기 위해서 노력을 하려고 한 게, 우리가 정신적인 지도자들에게 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그런 데에서 그런 것을 배워야 되고, 가르침을 받아야 되고, 같이 풀어나가면서 연구를 해야 되고,

    그렇게 해서 나아야 되는데, 그런 것은 놔두고, 자꾸 다른 것으로 나으라고 합니다.

    이 정법을 만나서 백일 동안 좋아서 듣고 있는데, 내 몸 안 좋아진 분 없습니다.

    거기에 약도 안 썼는데 좋아지는 것입니다. 왜? 내가 컨트롤해 가는 게, 내 아픔이 없어지게 돼 있습니다.

    왜? 바르게 노력하니까, 바른 것을 자꾸 공부하고 내가 노력을 하니까 그 아픔을 없애주는데,

    시간이 지나니까 또 내 방법으로 삽니다. 그러면 나았던 게 조금 있으면 또 안 좋아집니다.

    그렇게 해서 다시 아프면 어떻게 하냐? 내가 잘못 알았나 보다 해서, 백일기도를 처음부터 다시 합니다.

    그것이 백일 공부입니다. 내 고집이 안 세면, 그 아픔이 다시 돌아오는 게 없습니다.

    내 고집. 뼛속까지 아프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미칩니다.

    모든 것은 나에게서부터 일어나는 것입니다. 내가 잘못 알고 있을 수 있다고 생각을 해야지,

    내 것이 옳다고만 자꾸 주장을 하니까, 너는 아파도 네가 감당해야 되고, 힘들어도 네가 감당해야 됩니다.

    고집부리는 사람은 네가 감당할 게 있습니다. 그것을 깨치고 나면 안 하겠죠.

    내 고집이 세면 지도자가 안 됩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이 아프냐 하면,

    세상에서 나를 특별하게 살고 싶은 사람들입니다. 특별하게 살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되냐?

    그 사람 것을 잘 받아들여야, 그 사람에게 필요한 사람으로 내가 살 수 있습니다.

    상대 것을 잘 받아들이지 못하면, 절대로 상대를 위해서 못 삽니다.

    그런 것들을 내가 공부를 하라고 하니까, 처음에는 듣고 너무 좋다고 하더니,

    조금 시간이 지나니까, 자기 고집이 슬슬 나와서 또 고집을 부리기 시작합니다.

    자기들끼리 모여서 고집을 부립니다. 고집부려도 됩니다. 조금 있으면 더 아플 것이니까.

    나는 고집 안 부리는데요. 누가 옆에서 고집이 세다 하는데도, 나는 고집이 안 세다 그럽니다.

    그만큼 센 것입니다. 고집이 센지 안 센지는 남이 보고 판단하는 것이지, 어떻게 내 것을 내가 판단을 합니까?

    고집을 놓는 것은 두 가지가 없습니다. 많은 것을 받아들이면서, 내가 이것이 아닌 것을 맞다고 그랬었구나.

    하나씩 하나씩 깨 가는 것입니다. 그것을 알고 나면 고집이 안 나옵니다. 그것이 가르침을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정법을 들을 때는 티 없이 들어라. 티 없이 듣는 만큼 내가 빨리 변하기 시작합니다.

    백일은 내가 티 없이 들어봐야 될 것 아닙니까? 3년이 가면, 3년을 내가 티 없이 들어야 됩니다.

    이것이 결심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백일 결심을 하냐? 3년 결심을 하냐?

    백일 동안은 이것이 진짜로 옳은지, 내가 좋은 지를 타진하는 것이고,

    타진이 끝나고 나니까, 공부를 하는 것은 3년을 하는 것입니다. 1차 공부는 3년.

    3년 동안 초발심을 잃지 않는 것이, 3년 가는 것입니다. 백일 동안 하던 이것이 초발심으로, 

    그것을 연결해서 3년 가는 것입니다. 초발심을 잃어버리면 내가 원점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성교육입니다. 사람을 바르게 대하는 교육. 인성교육은 다른 게 아닙니다.

    사람을 바르게 대하는 것, 사회를 바르게 살고, 바르게 대하는 것, 내가 바른 것을 바르게 활동하고,

    사람을 바르게 대하고, 이것이 인성교육입니다. 이것이 홍익인간들의 마지막 교육입니다.

    이 교육을 해 갖고, 우리가 노력을 하다가 떠나니까, 천상에 가서도 그것이 연결이 됩니다.

    그런 교육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내가 다 아파도 몇십 년밖에 안 됩니다.

    나는 내생에 다시 오는 게 아니고, 이것이 마지막입니다.

    내가 다 아파서 고통을 받아도, 몇십 년밖에 안 됩니다. 이것을 갖고 얼마나 마무리를 잘하느냐?

    몰랐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모르는 게 있으면 또 가르쳐주십시오. 하면서 겸손해야 됩니다.

    아픈 것 앞에서도 겸손해야 됩니다.

    이해됩니까?

     

     

     

    감사합니다.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