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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떤 자세로 공부해야 하는지 (2/2)(홍익인간 인성교육 3530강)
    홍익인간 인성교육 2026. 1. 15. 11:20

    https://youtu.be/LJ7TZPHYFHI?si=BlHOZDUCi8p5Supe

    정법 강의 3530강

     

    자꾸 기압을 주면 거기에 안 가고 생활에 와서 뭔가 더 찾아야 될 건데,

    그걸 좋다고 또 무릎 꿇고 앉았습니다. 30년 그렇게 하고 있으면,

    나이는 먹는데 30년 무릎 끓고 빌고만 있으면, 너는 바보 됩니다.

    30년 뒤에는 더 큰 미션이 올 텐데, 이것을 처리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는가?

    우리 국민들이 왜 이렇게 미련해졌습니까? 이렇게 놔두고는 큰일 납니다.

    하나라도 배우고 갖춰서, 내가 세상을 볼 줄 알고 처리할 줄 아는 실력자가 돼야지,

    이런 걸 알면서 열심히 들으면, 환경이 확 확 달라집니다.

    나 자신이 이 정법 강의를 100일만 듣고 나면, 열심히 듣고 나니까, 

    100일 전에는 스님을 쳐다보니까, 아이고 스님 이랬습니다.

    열심히 100일만 듣고 나면, 스님이 지나가는데 이게 안 됩니다.

    아예 이 자체가 안 됩니다. 왜? 스님이 불쌍해 보이니까, 이게 안 됩니다.

    내 질량이 나도 모르게 그만큼 커졌습니다. 저 돌멩이한테 절이 안 됩니다.

    왜? 질량이 커져서 지금 돌한테 절할만한 유치원생이 아닌 것입니다. 대학생이 돼버렸습니다.

    해한테도 절이 안 됩니다. 저 해가 이제 바르게 보이는 것입니다.

    저 해는 지금 뭔가 질량을 모아 가지고, 여기서 막 운행이 돼 가지고,

    여기서 에너지가 나오는 것을 우리가 받아서 살고 있는데,

    우리가 태양신이라고 무릎 꿇던 인류의 시대가 있었습니다.

    달 보고 신이라고 하고, 달이 어떻게 신입니까? 지식을 갖추고 나니까 달이 신이 아닙니다. 물질이지.

    어째 저 상이 부처라고 그 앞에 무릎을 꿇고 그렇게 애원을 했던 것입니까?

    얼마나 모자라고 질량이 작았으면, 인간이 상 앞에 무릎을 꿇습니까?

    한 땀 한 땀 공부를 해서, 이것은 방편으로 있었고, 우리가 성장을 하면,

    우리를 키우기 위해 방편으로 있었으니, 언젠가 되면 거기에 무릎 꿇는 짓은 말았어야죠.

    모르는 자는 또 꿇겠지만, 아는 자는 안 꿇어야 될 것 아닙니까?

    거기에 매달리고, 뭐를 주는가 싶어서, 30년 40년 그렇게 하다 보니까,

    내 자식한테도 이상한 소리 듣고, 질량이 작으니까 그런 것입니다.

    내가 이런 걸 한 땀 한 땀 공부를 해서, 내 자식이 자라오면, 내 자식들은 무릎 꿇게 안 하고,

    잘 가르쳐 가며 키워야지, 자식이 나를 존경하고, 부모를 우러러보죠.

    부모가 돌멩이한테 절하고 있는데 어떻게 우러러봅니까?

    날 보고 자꾸 끌고 가 또 절하라 그럽니다. 지금 이래서 자식들이 다 돌아서는 것입니다.

    못할 짓을 시키고 있거든요. 자식들은 기본적으로 지식 사회에 태어나 갖고,

    지식을 접하고, 지식 바다에 빠져 갖고 살고 있는데, 이상한 걸 시키는 것입니다.

    부처님이 도와준다. 부처가 누군데? 모르는데 자꾸 그러거든요.

    모르는 게 나를 어떻게 도와줍니까? 부처님이 도와준다고 거기에 절하라 그럽니다.

    나는 부처를 모르는데 부처 네가 나를 도와준다 이 말입니까? 답답한 생각들을 하고 앉았습니다.

    우리가 무식할 때는 저 나무에 가서 비는 데도, 하느님이 도와줍니다.

    네가 부처라고 거기에 가서 절하는데 하느님이 도와줍니다.

    자연이 도와주는 것입니다. 자연의 에너지가 하느님입니다.

    예수가 하느님의 자식이 아니고, 나도 하느님의 자식인 것입니다.

    2000년 전에 예수가 우리 죄를 다 갖고 갔다고 합니다. 그것만 믿고 앉았습니다.

    성장해 갖고, 그것을 믿고 20년, 30년을 앉았습니다.

    예수가 어떻게 했길래, 아직까지 사회의 존경을 받고 인류에 이렇게 이름이 났는가?

    이름을 내려고 그러면, 이름을 낼 명분이 있어야 나는 것입니다.

    예수가 2000년이 지나도록, 이렇게 해 갖고, 사람들한테 이름을 떠올리며,

    그 사람들을 이끌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을까?

    예수는 그 시절에 자기를 위해서 살려고는 안 했습니다.

    그 어려운 시절에도, 작지만 그 사람을 위해서 살려고 노력을 했고,

    나를 위해서 살기보다는, 저 어려운 사람을 위해서 살려고 들었으니까,

    그 자체가 거룩한 것이었다. 이 말입니다. 내가 어려운 환경에서도 지조가 있었고,

    내가 믿는 이 하느님을 나는 지조 있게, 그 아픔 속에서도 이겨나갈 줄 알았고,

    없는 자에게는 불의를 보고, 내가 이런 그 사람들을 위해서 노력을 하고,

    굴복하지 않고 살 수 있었고, 이 자체가 거룩한 것입니다.

    죽어가는 사람 살려서 거룩한 게 아니고, 그렇게 사는 사람은 그런 힘이 스스로 있게 돼 있는 것입니다.

    우리도 오늘날 무당이 죽어가는 사람을 안 살려줍니까? 내가 죽어가는 사람을 안 살려줍디까?

    그러면 예수보다 힘이 없나요?

    예수도 그랬지만, 우리도 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우리도 전부 다 하느님의 일꾼들인 것입니다.

    석가도 하느님의 일꾼이고, 예수도 하느님의 일꾼이고, 우리도 하느님의 일꾼입니다.

    이 사회를 위해서 너희들이 이 몸을 받아 왔으면,

    이 사회의 어려운 자를 위해서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하는,

    하느님의 일꾼들은 그런 생각을 하고 살아야 되는 것입니다.

    예수는 한쪽을 위하고 한쪽을 비판을 하다가, 그러다가 오래 못 살고 그냥 가버린 것도 생각을 해야 되고,

    우리는 예수처럼 그냥 몇 년 이렇게 해 갖고, 이쪽만 이해하고,

    이쪽에는 딱 버티다가 죽어버리는 짓은 안 해야죠.

    그것은 미련한 것 아닙니까? 그러니까 3년밖에 활동을 못 했지요.

    지혜롭게, 위에도 불쌍하고, 아래도 불쌍하니까,

    위에는 어떻게 해 갖고, 아래는 어떻게 해야 도움이 될 것인가?

    이런 걸 생각해야 되는 게 지식인들이지, 한쪽 편만 들고 있다가, 위에서 공격받고,

    또 한쪽 편을 들고 있으면, 밑에서 공격받고, 그러면 명대로 못 사는 것입니다.

    지식인은 중도를 지켜서, 이쪽도 볼 줄 알고, 저쪽도 볼 줄 알고,

    여기서 좋은 패러다임을 꺼내 갖고, 전부 다 상생하도록 돕는 것이,

    이것이 지식인 아닙니까? 그래야 나를 믿고 전부 다 따르죠.

    이제 홍익인간들이 돼야 되는 것입니다.

    홍익인간들은 한쪽으로 치우치는 그런 지식을 가지면 못쓰는 것입니다.

    반쪽짜리 지식을 갖고 세상에 잘났다고 듭니다. 그러니까 살기가 어렵죠.

    생활 속에 도가 있는 것입니다. 이 안에 공부가 있고,

    이 안에 우리가 쓸 힘이 다 있고, 우리는 전부 다 홍익인간입니다.

    하느님의 사자들이고, 하느님의 일꾼들이다. 이 말입니다.

    교회에서 증 줬다고 일꾼 되는 게 아닙니다.

    하느님이 바라는 일을 해야 하느님의 일꾼입니다.

    이해가 됩니까?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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