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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기심과 이타심의 경계가 없어진다. (홍익인간 인성교육 11386,7,8,9강)
    홍익인간 인성교육 2021. 8. 6. 13:59

     

    정법강의 11386강

     

    정법강의 11387강

     

    정법강의 11388강

     

    정법강의 11389강

    우리가 지식이 많이 갖추어지면 이 논리 저 논리를 만들 수 있습니다.

    이것을 가지고 부딪치고 또 경험하고 부딪치고 경험을 하면서 선을 못 넘어가고 여기서 헤매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지식을 많이 갖춘 사람들이 이타행을 해야 된다는 생각은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 못 하고 있는 데서 놀고 있으니까 이렇게도 저렇게도 논리를 갖다 댈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지식인들입니다. 지식인들은 논리를 얼마나 잘 만지느냐가 지식의 최고점에 와 있는 것입니다.

    그 논리들을 가지고 여기도 붙여보고 저기도 붙여보고 하다 보니까, 결국은 이 시대가 이타행을 원합니다.

    우리가 달려온 것은 성장을 했다는 것인데, 인류가 성장을 했다는 것은 지식이 성장을 했다는 것과 같은 소리입니다.

    그러면 지식이 아래 있을 때 우리가 만지는 것하고, 지식이 위에 있을 때 만지는 것이 다릅니다.

    30% 때 만지는 논리가 다르고 70% 때 만지는 논리가 다릅니다.

    지금은 70%에서 만든 논리 시대가 온 것입니다. 이럴 때는 지식이 완성된 상태에서 만진다는 소리입니다.

    이럴 때는 이것이 철학인지, 지식인지, 논리인지, 상식인지 헷갈린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못 넘어서니까 이런 일이 일어나는 데, 이것이 국민을 위한 것이냐?

    내 자격지심으로 어떤 논리를 만들어내는 것이냐? 자기도 모르게 지금 그런 것들이 있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을 범죄라 할 것이냐? 잘못이라고 할 것이냐? 아닙니다. 과정입니다.

    내가 이것을 발견을 하고 내 자신을 갖추어 나간다면 선을 뛰어넘을 것이고,

    만일에 이것을 못 갖추고 자꾸 논리로 갖다 대 변명식으로 한다면, 

    변명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고 누가 볼 때 변명인 것입니다.

    국민이 다 내 옆의 사람이 볼 때 변명이라면 변명인 것입니다. 네 심정은 알겠는데 변명이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내가 모자랐다고 이야기를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너입니다.

    그것 자체가 너 자신이기 때문에, 여기서 뛰어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뛰어넘어 버리면 진짜 이타행이 나오고, 너는 이치를 깨친 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치를 깨치면 뛰어넘는 것이고, 이치를 못 깨치면 뛰어넘지 못하는 것이고, 여기에 차이가 정해지는 것입니다.

    이치를 깨친다는 것은 무엇인가?

    진리로 풀은 것이냐? 진리로 교육을 받았으면 진리로 풀어가는 것입니다.

    진리로 풀은 것이 맞다면, 진리로 교육받은 것이 맞다면 이치로 깨칩니다.

    교육 중에는 2가지가 있는데 지식이 있고 진리가 있는 것입니다.

    인류가 지금까지 지식으로 교육을 받은 것입니다. 지금은 진리로 교육받을 때가 왔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만지기 시작하는 것이 2000년부터이고, 2013년부터는 진리를 깨쳐서 넘어가는 자들이 있었어야 됩니다.

    이치를 깨친 자가 되면 한 개 한 개의 답이 분명합니다. 답이 분명하여 인류의 법이 됩니다.

    이치로 깨쳐서 답을 정하면 이제 인류의 답이 나오기 시작합니다. 모순 시대에서 넘어가 답이 나오는 것입니다.

    답이 나올 때는 모순 시대가 항상 그 앞에 있습니다. 모순이 안 보이면 논리가 잘못이라는 것을 알 수가 없습니다.

    모순이 나옴으로써 새로 생각해봐야 될 문제라는 것이 만들어지고,

    여기서 우리가 진리로 나누다가 보니까 이치가 깨달아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이것에 대한 답이 새로이 생성됩니다. 이것이 나와야 인류가 이제 미래 답이 나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미래 답을 찾기 위해서 산 것이 인류이고, 70% 까지 온 것입니다.

    그다음 이 70%를 넘어갈 때는 미래의 답을 찾아서 선을 놔야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민족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난 이유입니다. 이 말은 천지창조 이래로 처음 나온 말입니다.

    인간 역사에 처음 나온 소리가 민족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고 이야기한 것입니다.

    또 우리 보고 전후 1세대라는 이름을 붙여줬습니다. 이런 것은 연구 과제입니다.

    연구는 안 하고 써먹기만 한다면 나중에 우리에게 압박으로 들어옵니다.

     

    인류가 지금까지 빚어낸 음악 안에는 미션이 다 들어가 있는 것입니다.

    그 미션을 우리가 이루어 냈느냐? 떠들고 너의 감정으로 쓰기만 했느냐?

    이런 것들이 인류의 답을 못 풀어낸 것입니다. 그래서 음악은 없어지지를 않습니다.

    영원한 미션입니다. 시대에 묶어 놓은 것입니다. 선을 넘은 사람은 이것을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선을 못 넘고 이 안에서는 같이 헤매는 것입니다. 전부 다 주고받고 말하다 끝나는 것입니다.

    토론을 해보려 하다가 맨날 이야기하다가 끝납니다. 3000년 해도 그렇게 끝납니다.

    완 됩니다. 답이 안 나옵니다. 이 안에서는 답이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선을 넘어서는 깨달을 수 있는 뭔가 새로운 이론으로 이야기를 해야 되는 것이지,

    안 그러면 깨달을 수가 없습니다. 그것이 지식 안에서 노는 것이고, 

    상식까지도 지식입니다. 진리로 노는 것 하고는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 정법 가족이 얼마나 우수하고 얼마나 큰 것을 얻고 있는지 모르고 있습니다.

    스승님의 고마움이 뭔지 찾아보라고 하면 없습니다. 아픈 것이 안 아파졌고, 조금 사는 것이 편해졌다.

    이런 것이지. 그것이 아닙니다. 진짜로 이것을 찾으면 뭐가 나오냐 하면, 

    여러분들은 뭔가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있다. 이것입니다.

    이것을 풀어보면 인류는 지금까지 신에게 매달리고 살았던 역사입니다.

    세계의 모든 인간은 지금도 그러고 있습니다. 

    지금 어떤 한 군데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캐치해 보면 어마어마한 사건이 지금 일어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정법으로 공부하는 사람들이 이 법문을 듣는데 6개월만 좋아서 듣다 보니까, 어떤 일이 일어나냐?

    매달리는 것이 끝납니다. 통곡의 벽에 가서 매달릴 일도 없고, 부처님에게 가서 매달릴 일도 없고,

    예수님에게 가서 매달릴 일도 없습니다. 하느님에게도 매달릴 일이 없어집니다.

    조상님에게 매달리는 것도 없어집니다. 왜 이런 일이 발생을 하냐?

    인류는 이런 일이 일어날 때까지 무엇을 찾고 있습니다.

    몇천 년 전부터 계속 이야기하는 것이, 불교, 기독교, 도교에서 하는 소리가 있습니다.

    '진리를 만나는 자 너의 영혼이 자유로워지나니!'

    이 소리를 계속하면서도 계속 몇천 년을 내림 내림 믿는데 자유로워졌나요?

    자유로워질 수가 없는 소리를 몇천 년 전부터 하면서 거기에는, 진리라고 하면서,

    아직까지 매달리고 있는 것을 벗어나게 한 자가 한 명도 안 나옵니다.

    그런데 지금 대한민국에서 희한한 놈이 나와서, 지금 생활도를 가르치는데,

    홍익인간이 생활 속에서 바르게 사는 것을 가르칩니다.

    그 공부를 하고 있으니까 내가 힘이 생겨 남편 말도 잘 안 듣습니다.

    이제 부처님 하느님에게 매달리는 것이 끝났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부정하냐? 아닙니다. 부처님, 예수님 어떤 신도 부정하지 않습니다.

    부정하지 않는데 매달림이 없어진 것입니다. 무슨 소리냐? 자유로워졌다는 것입니다.

    최고의 성불은 이것을 얘기하는 것입니다. 

    자유로워졌다면 우리는 무엇을 위해서 가야 되는가? 

    생활 속에서 바르게 사는 원리를 찾아가야 됩니다. 우리에게는 어떤 생활의 환경을 줍니다.

    이런 환경을 주는 것은 우리가 이치를 깨쳐서 바르게 접하면,

    생활환경을 잘 풀어 가니까 어려움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나에게 주는 환경을 잘 풀어가면 어려움에서 벗어나고, 이것을 깜깜하게 모르고 그냥 매달리고 있으면,

    어려움이 오는 것입니다. 이것이 지식인에게 무조건 오는 것입니다. 이것을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자연은 환경을 줄 뿐이지, 운용은 네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매달리는 자는 왜 매달리고,

    안 매달리는 자는 왜 안 매달리는지 이것의 답을 찾아야 됩니다. 안 매달리는 것은 두 가지입니다. 

    천지도 모르고 안 매달리는 것하고, 아니까 안 매달리는 것 하고는 다른 것입니다.

    매달리는 것은 모르니까 매달리는 것입니다.

    매달리기 시작한 것을 벗어난 다는 것은 이치를 깨치고 바르게 사는 법을 알아야 벗어납니다.

    신의 손아귀에서 벗어났다는 말입니다. 벗어나는 것은 자유로워지는 것입니다.

    왜? 진리로 우리는 공부를 했다는 것입니다. 

    작지만 한 땀 한 땀 지금 벗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류 역사가 바뀌고 있는 것입니다.

     

    이 지구촌에 인간이 와서 처음에는 천지도 모르고 살아서, 동물 잡아먹고살다가, 지각이 일어나고,

    서서히 질량이 좋아짐으로써 이제는 질서가 만들어지고, 어디에 매달리고 한 역사가 있는데,

    이것이 인류가 지금까지 발전해 온 것이 결국은 신 앞에 매달리고 사는 것입니다.

    신이 뭔지도 모르고, 그러니까 매달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나라 한 군데에서 지금 매달리는 데서,

    자연적으로 벗어나고 있다는 것이, 국제사회에 정신적인 이런 것을 연구하는 학자들에게 소문이 들어가면,

    그것 취재하러 바로 와야 됩니다. 인류가 지금 하는 행위가 어디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것은,

    위대한 역사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마어마한 역사가 일어나고 있는 것인데,

    우리는 이것을 겪으면서도, 나는 무엇에서부터 영혼이 해방이 안 되고 천상에 가면 어떻게 될까요?

    지금 스승님에게서 무엇을 도움을 받았는지를 모르고 있습니다.

    뭐 좀 좋아졌다. 그것이 도움받은 것이 아닙니다. 기복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인류의 역사가 바뀌는 것입니다.

    그것이 홍익인간들로부터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홍익인간 지도자들로부터 그렇게 돼야,

    지도자들이 앞으로 인류의 홍익인간들을 이끌어 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매달림에서 벗어나고, 사람끼리 지금 얼마나 중요한 존재인지?

    우리가 누구인지, 이 자연이 무엇인지? 인류가 무엇이고, 하느님이 무엇인지?

    다 풀고 나니까, 답부터 얘기하면,

    하느님은 거룩하고, 우리가 있니 없니 소리도 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며, 그러나 매달리는 존재 또한 아니더라.

    항상 함께 하고, 함께 풀어 가는,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찾아가는 게 아니고, 항상 너와 같이 합니다.

    아니까 안 매달립니다. 예수에게 안 매달립니다. 왜? 예수를 아니까.

    인정을 안 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르게 알면 매달리는 존재가 아닙니다.

    부처를 알면 부처를 바르게 아니까 안 매달리는 것입니다.

    부처와 나를 바르게 압니다. 싯달타가 누구이며, 나를 아니까 그것은 매달리는 존재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우리 조상님을 바르게 아니, 역할을 알고 나를 압니다. 그러면 조상에게 매달릴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마어마한 사건입니다.

    인류의 역사가 바뀌는 순간이 대한민국에서 일어나고 있는데, 이것을 아직 정립할 만큼 소문이 안 났습니다.

    이것이 지금 정법 가족입니다. 정법 가족은 어마어마한 역사를 만들면서도,

    지금 이것을 자랑스럽게 여길 만큼의 이런 것을 만지지 못하고 있는 수준에서의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무리가 조금씩 조금씩 많아지면, 이것이 세계에 소문나는 것은 순식간에 일어납니다.

    세계에서 아주 유명한 학자들이 여기에 와 보고 깜짝 놀라는 일이 일어납니다.

    그때 이 사람들이 누구냐? 해동 신선국에 사는 신선들이다. 이것이 홍익인간 지도자들입니다.

    이제 우리가 홍익인간 교육을 바르게 받아야 될 때가 됐습니다.

    우리가 홍익인간이 뭔지 바르게 알아야 됩니다. 지금까지 전설로 만들고, 무슨 신화로 써먹다 보니까,

    홍익인간이 그 안에 다 파묻혀 버렸는데, 인류는 홍익인간이 되기 위해서 발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직까지 홍익인간은 누구도 그것을 풀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홍익인간이 무엇임을 우리부터 풀어나가야 됩니다. 지금까지 저급하게 써먹던 것들을 털어 내야 됩니다.

    홍익인간들은 자유로운 사람들입니다. 자유로운 사람이 돼야만 이타행이 가능합니다.

    이타행은 내가 불안하고 내가 매달리는 사람은 절대 이타행을 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객기입니다.

    누구를 돕는다고, 아프리카 돕는다고 많이 있었지요? 돕다가 신경질 냅니다.

    나는 돕자고 하는데 동참 안 한다고, 그리고 자기도 퍼져버리는 것입니다.

    그것은 돕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진짜 도우면 무리가 모입니다.

    진짜 이타행을 하는 설계를 해서 바르게 하고 있다면, 모든 사람이 이리로 몰리게 되어 있습니다.

    설계가 잘못되어 있고 돕자라는 말을 잘못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돕는 것이 아님을 알아야 됩니다.

    이타행이라는 것은 내가 벗어나야지만 가능합니다. 

    내가 하느님에게 매달리고 있는 자가 이타행을 할 수 있다? 절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자기 욕심입니다.

    내가 저자들을 도울 테니까, 하느님 저에게 주십시오. 이거든요.

    얼마나 욕심이 많은 짓을 하는지 자기는 모르고 있습니다.

    하느님이 저자들에게 다 주면 돼지, 왜 그것을 나에게 주어서 내가 인기를 얻으려고 듭니까?

    옛날에 키울 때는 이리도 해보고 저리도 해봤지만 지금은 그런 것 없습니다.

    하느님이 그렇게 절대 안 해줍니다. 진정 이타행을 할 때 하늘에서 너에게 힘을 다 줍니다.

    이것이 공인을 얘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에 홍익 사행도를 써 놓은 것입니다. 

    지금 이 사회를 위해서 무엇을 할까? 아직까지 지금 공부를 하자는 것입니다.

    무엇을 해야 될 것인가를 생각하라고 그것을 넣어 놓은 것입니다. 아직은 네가 할 수 없으니까.

    할 수 있는 자는 여기서도 벗어납니다. 내가 이타행을 하는 자는 여기서도 벗어납니다.

    홍익 사행도에서도 벗어난다는 것입니다.

    홍익 사행도는 내가 이것을 한 땀 한 땀 이렇게 가야 될 때가 되었음을 지금 이야기하는 것이고,

    내가 진짜로 벗어나서 이타행을 할 때는 이 자체도 필요 없는 것입니다.

    그 자체가 나니까, 무엇을 하고 있기 때문에, 할 것인가에서 벗어나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를 불사르는 것입니다. 인생을 마무리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홀연히 떠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한 자가 다시 세상에 와서 인기 끌 일이 있습니까? 다시 배울 일이 있습니까?

    그래서 마지막 일생이라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배운 사람은 더 이상 배우러 이 땅에 안 옵니다.

    내가 다 배웠으니까, 얻은 것을 행하고 갈 뿐입니다.

    이타행이라는 것은 아직까지 이루어지지 않고, 지금 우리 지식인들은 이타행을 안 하고 싶은 사람은 없는데,

    이것을 못 넘어서고 있는 과정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니까 그렇게 이해를 하면 됩니다.

     

    진리를 공부하지 않아도 이타심이 일어나지 않겠습니까?

    절대 그런 일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답입니다.

    진리를 만난 것이 분명하다면 이타행을 할 수 있는 길로 접어듭니다. 왜? 깨우치니까.

    깨우친 자 아니고는 이타행을 할 수 없습니다.

    깨우친 자에게 배워가면서 나도 깨우치게 되는 것이니까,

    깨우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것은 아닙니다. 선을 넘어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가르침을 받는 것이 두 가지가 있는데, 지식과 진리가 있습니다.

    지식은 살아가면서 우리가 모든 것을 축적해 오고 정리를 한 것이 지식입니다.

    그런데 인류사회의 것을 전부 다 끌어들여 가지고 이 지식을 갖춘 사람들은,

    그 다음 우리가 가르침을 받을 것이 있어야 되는데 이것이 진리 가르침입니다.

    이것은 지식이 아니고 자연의 이치입니다.

    다르게 이야기를 하면 아이들이 자라서 청년이 되고, 건전하게 청년이 되어서 어른으로 넘어가는 순간.

    인간은 세 분류로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 지구촌도 똑같습니다. 

    이 지구가 활동을 하면서 아이 활동이 있고, 청년 활동이 있습니다. 

    이차대전 이후에 청년 활동을 시작한 것입니다. 세 등분입니다. 네 등분은 절대 없습니다.

    그러면 차원이 달라집니다. 그래서 3대 7의 법칙이 있는 것입니다.

    지구가 지금 70% 운행이 되었다는 것은, 3대 7의 70%의 운용이 되었다는,

    청년으로 다 자랐다는 얘기이고, 지금 여기서 어른으로 넘어갈 선을 만났다는 얘기입니다.

    사람도 우주도 시대가 그렇다는 얘기입니다.

    어른으로 넘어가면 지천명이라고 우리 인간에게 얘기를 해 놨는데,

    총체적으로 이 우주를 그렇게 붙이면 됩니다.

    우리가 지식을 갖추면서 이 지구촌에 오대양 육대주를 선을 다 그어 놓았습니다.

    인간에게는 오장육부가 있습니다. 이 오장육부가 자기 역할이 다 다릅니다.

    이 지구 하나가 인간하고 똑같습니다.

    바르게 운행되려면 오장육부의 자기 자리에서 자기 일만 잘하면 됩니다.

    이 자연의 이치를 못 깨치니까 손을 못 대고 있습니다.

    지식을 많이 갖춘 박사들이 이것을 연구해야 되는 데도 안 하고 있습니다. 못 넘어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기심에서 벗어나려면 이치를 깨친 자만이 이기심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네가 어떻게 말을 하고, 논리를 정해서 이것은 어떻고, 이기심은 나는 아니라고 하든지 간에,

    선이 분명한 것입니다. 진리를 접하지 못한 자, 너 영혼이 환경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더 논리를 갖다 대면 자꾸 논리가 논리를 만들어서 복잡해지기만 하는 것이고,

    정확한 선을 이야기하는 것은, 진리를 만나지 못한 자는 현 위치 모든 환경에서 너는 벗어날 수가 없다.

    너는 이기심 안에서 못 벗어난다 이것입니다.

    이 진리를 우리가 만났다는 표시가 무엇이냐 하면,

    네가 지금 벗어나고 있다면 너는 진리를 분명히 만난 것이기 때문에 벗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상식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진리를 접하지 않고는 일어날 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똑똑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이런 것이기 때문에 이기심은 나쁜 것이 아니고 넘어서야 될, 

    목에 다인 턱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넘어서면 자유로워집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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