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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권리 - 저마다 시작이 다른 평등의 조건 (홍익인간 인성교육 12549강)
    홍익인간 인성교육 2022. 8. 17. 11:05

     

    정법강의 12549강

    사람은 태어날 때 사주를 갖고 어떤 주소에 태어납니다.

    맨땅에 태어나기도 하고, 거지로 태어나기도 합니다.

    그러면 그 주소가 다 다른 것입니다. 이것이 사주입니다.

    원래 기둥은 6개인데 지금 2개 빼고 4 기둥만 세워놓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대한민국에 어떤 년도에 태어났습니다.

    대한민국의 질량이 얼마냐? 나는 분명히 거기에 태어났습니다.

    질량수가 여기에서 1이라고 볼 때, 미국은 질량수가 10이었습니다.

    미국에서 태어나는 사람은 한도액을 얼마 받았겠습니까? 9배 더 받았겠지요.

    이것이 평등한 것입니다. 이것을 더 쉽게 이야기하면,

    나는 클래식을 들어야 되는 집안에서 태어났습니다. 

    사주가 태어날 때 그렇게 태어난 것입니다. 평등권은 여기서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고구마 밭을 매는 할머니 집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러면 질량의 도수가 얼마냐 이것입니다.

    여기는 질량의 도수가 얼마고, 여기서 쓰이는 것들이 대리석을 쓰겠어요? 

    밭에서 돌 하나 주어와서 받치는 것으로 쓰겠어요?

    여기는 그것을 못 쓰게 돼 있기 때문에, 너에게는 10억을 주고,

    밭에서 돌을 주워 쓸 수 있게끔 환경을 준 데서 태어난 너에게는 20원만 줘도 됩니다.

    여기는 10억 줬는데, 여기는 1억 도 아닙니다.

    자연적으로 살 수 있게끔 줬는데, 저기를 쳐다보고 나는 이렇게 안 살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전생과 너의 업과 이런 것들이 전부 다 맞물려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면 그것을 젖히고 나도 그렇게 태어나렵니다. 전생에 그렇게 살지.

    전생에 게을렀고 그러니까, 밭을 좀 매라고 온 곳입니다.

    전생에 나는 뭔가 부지런하게 노력을 했으니까,

    지금은 여기서 환경을 누리면서 큰 일을 할 생각을 해라. 이러고 태어난 게 사주입니다.

    질량의 법칙을 따져야 됩니다. 누구나 % 는 똑같이 받아왔습니다.

    내가 지금 이야기하는 것을, 벌써 법문을 해 놨는데,

    가지고 당겨오는 게, 자기는 자기에게 갇혀서 이것을 못 당겨오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인간들은 평등하게 태어났고, 모든 환경은 정확하게 줬습니다.

    %로 정확하게 줬습니다. 네 삶의 30%는 받아오는 것입니다.

    이것은 % 이지 얼마의 개수가 아닙니다. 인생의 % 입니다.

    우리 사주는 30%는 받아온 것이고, 70%는 네가 여기서 확장해 가며 가는데,

    어떤 사람은 너에게 준 혜택 중에서 3%밖에 못 쓰고 가는 사람이 있고,

    3% 쓴 사람이 누구냐 하면 아인슈타인입니다. 이제 할 말이 딱 없어집니다.

    나에게 자연에서 준 환경에 내가 충분히 누리면서 갔다.

    최고로 쓰고 갔다는 사람이 아인슈타인인데, 이 사람이 3%밖에 못 썼습니다.

    인간의 능력은 무한하다는 소리입니다.

    자연에서 준 이 환경을 바르게 쓰지 못하는 데서, 우리는 문외 해 가지고,

    우리는 그것을 더 쓰기 위해서 노력을 하며 성장을 하는 것입니다.

    아인슈타인이 왜 3%밖에 못 섰느냐 하면, 공부의 질은 약한데 재주만 쓴 것입니다.

    재주 쓰는 동안 발전을 못 했습니다.

    자기가 가져온 질량 30%에서 3%밖에 못 썼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살까요? 1%나 썼을까요?

    우리가 하고 나서 그 소리를 하는지, 바닥에 앉아서, 

    기본적으로 내가 쓸 수 있는 힘을 쓸 수 있는 만큼 내가 배우지도 않고,

    지금 그렇게 살고 있으면서, 그러는 것인지,

    먹고사는 것은 기본 바탕입니다. 아직까지 1%가 못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우리 국민들이 뭘 생각하느냐 하면, 먹고사는 걱정을 합니다.

    너는 1%도 네 인생을 안 산 것입니다. 너는 동물로 사는 것입니다.

    먹고살고, 내가 살아나갈 계산법으로 삽니다.

    겨울 준비하는 다람쥐, 곰 하고 다를 바가 뭐 있습니까?

    먹고살기 위해서, 겨울을 지내기 위해서 살려고 하는 것,

    많이 잡아먹어야 되고, 많이 챙겨야 되고, 이래야 겨울을 나야 사니까,

    뭐가 다릅니까? 그런데 거기서 1%가 올라가면 이야기가 확 달라집니다.

    우리는 지금 기본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기본을 벗어났을 때 어떻게 되냐?

    내가 가르쳐주는 게, 이 시대에 기본을 벗어나는 것은,

    내가 너를 위해서 어떻게 사느냐입니다.

    아인슈타인은 남을 위해서 살은 적이 없습니다. 머리가 좋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쪽 재주가 좋았던 것이지, 남을 위해서 산 적이 없습니다.

    자기 계발을 위해서 살았습니다. 재주를 갖고 지금 사는 것하고,

    나는 내가 너를 위해서 살려고 하는 것은, 재주를 뛰어넘은 것입니다.

    그런 정신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홍익인간 정신을 가지라는 것이, 

    나는 너를 위해 살고자 하는 정신을 가져라.

    사회를 위해서 살려고 하고, 인류를 위해서 살려고 해라.

    내 삶을 위해서 생각하고 멈추지 말고, 그것은 안 멈추어도 30%는 그냥 있는 것이니까,

    한 단 넘어가라는 것입니다. 30%는 너의 가지고 있는 행태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주로 받아 나와서 사는 것이니까, 그 30% 안에서는 아무리 똑똑해도 30%입니다.

    1% 넘어간다는 것은, 나를 위하는 것이 아닌 남을 위하는 것입니다.

    한없이 남을 위해서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럴 때마다 너는 빛나고, 인생이 빛난다 이 말입니다.

    선천 시대에는 너를 챙기며 사는 그 공부를 시켰지만,

    여기서 선천 시대 마지막에는 깨달아서, 네 인생을 살아야 되는 시대가 왔다는 것이 후천 시대입니다.

    네 인생을 남을 위해서 살아야 됩니다.

    네가 답답하고, 네 것이 안 된다고 환장하고 성내지 말고, 성낸 만큼 너는 더 어려워집니다.

    네가 답답한 것은 네가 만든 것 아닙니까? 누구에게 전가를 합니까?

    우리가 갑갑하고 답답한 것은 내가 만든 것입니다.

    갑갑하면 누가 답답합니까? 본인입니다.

    내가 갑갑하면 남이 답답하나? 내가 갑갑한 것입니다.

    그것은 내가 만들었기 때문에, 이것은 네가 극복을 해야 되는데,

    모르니까, 극복이 안 되니까, 스승님이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이해가 되면, 가르쳐 주는 대로 바보처럼 해 보면 되는 것입니다.

    네가 남을 위해서 산 적이 있습니까? 왜 잘 살아야 됩니까? 이것이 어디 깡다구입니까?

    남보다 더 잘 살아야 되는 이유가 뭡니까?

    남을 위해서 한 땀을 행한 적이 있습니까?

    남을 위해서 행한 자는 절대 네가 어렵게 안 놔둡니다.

    갑갑하게 안 좌둡니다. 절대 힘들게 놔두지 않습니다.

    이 법칙을 알아야 됩니다. 천지도 모르면서.

    그래서 힘든 것을 풀어주기 위해서는, 네가 어떻게 갖추고 공부하는데 노력을 하니까,

    조금 풀어주는 것입니다. 스승님에게 어려운 사람이 다 왔습니다.

    좋은 사람은 아직까지 하나도 안 왔습니다.

    내가 약속하는 게 뭐냐 하면? 그때 1대 1로 만나서 내가 약속했던 게 있습니다.

    '내가 너의 어려움을 풀어주면 너는 어떻게 살래?'

    '열심히 공부하겠습니다.' 이 약속을 받고 그것을 풀어준 것입니다.

    아픈 것도 풀어주고, 어려운 것도 풀어줬더니, 이제 자기 멋대로 삽니다.

    열심히 공부는 안 합니다. 그러면 다 걷어야 될 것 아닙니까?

    나는 분명히 걷습니다. 왜? 안 걷으면 내가 혼납니다. 자연에 두드려 맞습니다.

    자연의 힘을 함부로 쓰는가? 바르게 써야지.

    '열심히 공부해라. 그 대신 이 어려움은 내가 풀어준다.'

    이것이 진정한 깨달음을 가진 사람이 하는 행위입니다.

    노력도 안 하는데 풀어줍니까? 

    네가 어려울 만큼 어려워졌으니까 나에게 와서 부탁을 하는 게 아닙니까?

    '그러면 내가 지금부터 공부를 시켜줄 테니까 열심히 공부하겠느냐?'

    '예 스승님.' 한다고 약속을 합니다. 그래서 풀어줍니다.

    좋아지니까 공부는 안 하고 자기 멋대로 삽니다. 그러면 기간을 두고 내가 봅니다.

    기간이 지났는데도 그런다. 그러면 다시 아파 오는 것입니다. 힘들어 오고,

    번 것 다 뺏기고, 이제부터 남에게 구걸하러 다녀야 됩니다.

    정확하게 걷어갑니다. 나는.

    지금 이만큼 도와준 것이, 3년은 공부하라는 것입니다.

    천하에 다른 누가 풀어주면 거기 가서 풀어라.

    못 풀어서 나에게 부탁을 하려면, 나는 조건이 있다.

    3년 공부 열심히 하라는 것입니다.

    공부를 안 하고 중간에 농땡이 치고 딴짓을 했습니다.

    그러면 그 시간 빼야 됩니다. 시간만 채웠다고 3년 됐나요? 누구한테라도 그런 게. 

    나는 시공간으로 안 따집니다. 질량의 법칙으로 따집니다.

     

    그런 것들이니까. 우리가 잣대를 댈 때,

    너는 숲에서 태어났으면, 숲에 있는 것을 활용해서 살라고 거기에 태어난 것이고,

    대리석 집에 태어났으면 대리석을 활용하며 살라고 거기에 태어났으니까,

    거기는 주는 게 용량으로 따지면 좀 다르고,

    나는 질량으로 따지면, 내가 여기서 살면, 이 질량만 갖고 살 수 있는데,

    왜 저것을 넘겨다 보냐는 말입니다.

    네가 발전을 해 갖고, 저것은 얼마든지 넘어설 수 있고,

    저 사람은 이것을 갖고 잘못 살면, 얼마든지 떨어질 수 있고,

    저 사람이 숲으로 가고 나는 대리석으로 갈 수 있습니다. 살면서 환경을 다 그렇게 줍니다.

    노력도 안 하고 자꾸 그것만 이야기하고, 자를 재고 있으니까,

    30년 지나도 나는 그 자리에 있습니다. 그냥 자만 잽니다

    나는 그림을 그릴 소질이 조금은 있는데 많이 없습니다. 그래서 안 그립니다.

    안 그리면서 나는 소질 없다고 자꾸 안 그리고 있으면,

    그러면 36년 뒤에 이것보다 더 잘 그리냐?

    오히려 굳어서 더 못 그립니다. 그러면서 아직 그 소리를 합니다.

    그런데 그림을 못 그리는 사람이, 지금부터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6개월이 지나니까 엄청나게 잘 그립니다.

    이 사람이 3년 그리고 나니까, 그다음에 화가가 됩니다.

    왜 안 하면서 그 소리를 하냐는 것입니다.

    안 하면서 하는 것은 1%가 올라가지 않습니다. 0.1%도 성장을 못 합니다.

    하십시오. 오늘 하고, 내일 하고, 네가 100일이라도 하십시오.

    100일 후엔 다릅니다. 계산을 해서 거기에 머물지 말고 시작을 하십시오.

    시작하면 6개월 후에 다르고, 1년 후에 다르고, 3년 후에 달라집니다.

    네가 이 만큼 높아진다 이 말입니다. 실력이라는 게.

    왜 자꾸 머물고 있습니까? 자꾸 계산을 하면서.

    3년 가도 이 자리에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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