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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감에 대한 바른 이해 (홍익인간 인성교육 13501강)홍익인간 인성교육 2024. 12. 12. 11:42
https://youtu.be/55DdmrlUkag?si=GqvurE1bCIxA_NRR
기대감이 높아진다는 것은 상대한테 기대감이 높게 내가 행동을 한 것입니다.
상대가 기대감이 높아져 있을 때는, 내가 행동을 한 만큼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행동을 그렇게 해 놓고, 기대만큼 활동하는 게 질이 약할 때,
'그것밖에 못하니'가 내가 한 만큼 들은 소리입니다.
우리 젊은이들이 이렇게 하면 뭐 이상하다고 안 받아들일 수도 있는데,
그래도 우리가 근본을 알고 가기 시작을 해야, 나 또한 다른 사람에게 그렇게 할 것입니다.
기대감이라는 것은 상대를 그렇게 만든 만큼, 내가 실력이 모자랄 때 듣는 것입니다.
그것이 지금 이 사회가 그렇게 돼 있는 것입니다.
이 사회의 누구를 만나러 갈 때도, 옷을 바르게 잘 입고 갔습니다.
또 누구 선을 보러 갈 때도 옷을 잘 입고 가고, 다 다듬어서 갔습니다.
다듬어서 갔는데, 인사할 때는 서로가 아주 공손했습니다.
말을 몇 마디 하다 보니까 질이 떨어지는 것입니다. 이때 기대감이 완전히 죽어버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일터에서 입던 옷을, 아주 청결하게 다니던 사람은 그대로 입고 나갔습니다.
그러면 안 꾸몄으니까 기대를 안 합니다. 기대를 안 하는데,
이야기를 하다 보니까 진국입니다. 질이 너무 좋습니다.
그럴 때 어떤 소리를 듣겠느냐? 나는 그렇게 안 봐서 죄송하다고, 미안해합니다.
이런 것들이 우리가 역사적으로 우리 선조님들이 뭐라고 했냐 하면,
있어도 있는 척하지 마라. 배워도 배운 척하지 마라. 안다고 아는 척하지 마라.
이런 것들이 우리 선조님들이 우리 자손들한테 계속 5천 년 동안 내려온 민족입니다.
안다고 날뛰지 마라. 이런 것들이 5천 년 동안 계속 내려오면서 DNA에 심어준 민족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라면서 이런 것들을 너무 놓아버렸던 것입니다.
이런 걸 읽어가면서 자란다든지, 소리를 들어가면서 계속 우리를 키웠어야 되는데,
다 놓아 버렸습니다. 놓고 어떤 것을 했냐? 서양 것을 다 가지고 들어왔습니다.
우리가 지금 갖추고 있는 지식은 뭐든지 서양 것입니다.
나무가 뿌리가 있고, 둥치가 있고, 가지가 있는데, 우리는 뿌리입니다.
뿌리인데, 둥치와 가지 것을 가지고 들어와서 우리가 습득하고 있는 게 지식인데,
이것은 서양 것입니다.
우리 민족이 뿌리 깊게 내려오던 것은 우리가 아직 안 배웠습니다.
우리 젊은이들이 지금 헷갈리는 것입니다.
우리 민족을 모르고, 우리 선조님들을 잘 모르는 것입니다.
그런 것들도 우리가 지식을 조금 갖추고 나서, 우리 선조님들이 하던 이런 역사의 지식도,
조금 받아들였어야 하는데, 이런 걸 우리한테 중간에 조금씩이라도 못 일깨워줬던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젊은이들이 헷갈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유혹이라든지, 기대감이라든지, 이런 것들이 우리가 지금 헷갈린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너무 나를 기대하게도 하지 말고,
예를 들어서 우리가 어디에 취직을 했다든지 하면, 돈 벌러 안 갔으면 그 기대가 안 망가집니다.
저 사람이 처음에 와서는 일 잘할 것 같이 와 가지고, 돈 얼마 주기로 돼 있는데,
일하는 거 보니까 형편없습니다. 기대감이 무너지는 것입니다. 그때 안 좋은 소리를 듣는 것입니다.
돈을 벌려고 일하지 말라고 스승님이 가르쳐주던 게 그것입니다.
일은 우리가 일터에 가는 원리를 알아야 됩니다. 우리 젊은이들이 일터에 가는 이유는,
이 일터에 가야지만 어떤 걸 경험을 하고, 어떤 환경을 만납니다.
이러한 일터에 안 가면 이런 환경을 못 만나게 돼 있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어떤 일터를 택해서 가느냐가,
나한테는 어떤 환경을 주기 위해서, 그 방편으로 있는 것입니다.
영업을 한다면, 어떤 영업을 해야만 어떤 환경을 만납니다.
우리는 환경을 만나기 위해서 사회에 나오는 것입니다.
그 환경을 우리는 잘 흡수해 가지고, 앞으로 나한테 아주 질량 높은 액기스로 써야 되는데,
이것은 놔두고, 일터에 돈 벌러 갔다고 돈만 챙긴다는 말입니다.
이러니까 나한테 남는 게 없는 것입니다.
돈 들어오는 것은 나한테 재산이 되는 게 아니고, 나한테 주는 환경이 내 재산을 만드는 것입니다.
이것을 자꾸 만들다 보니까, 나는 어느새 벌써 내 모자람이 차 있습니다.
그때는 무엇을 해도 잘되는 것입니다. 그때 돈이 막 들어옵니다.
돈은 벌려고 해서 들어오는 게 아니고, 내가 갖춘 만큼 활동을 할 때, 돈이 들어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남 밑에 내가 돈을 벌러 갔습니다. 벌러 갔다는 것은 나한테 뭔가 질량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돈을 벌러 가는 것입니다. 돈을 벌러 가서 돈 버는 데만 신경을 쓰고 있으면,
너한테 진짜 주는 이 환경의 질량을 너는 못 챙기는 것입니다.
그러면 시간이 지나면, 너한테 지금 자연이 주는 환경이 있는데 그것을 못 챙겨서 눈이 안 뜨이고,
세상이 안 보이는데 누구 책임으로 돌릴 것이냐? 이것은 내 책임인 것입니다.
자연이 0.1미리도 틀리지 않게, 내가 하고자 하는 데서 환경을 나한테 필요한 것을 다 주게 돼 있습니다.
그런 것을 어떻게 소화를 하는 공부를 했어야 되는 것입니다.
사람을 키우기 위해서, 우리를 위해서 자연이 일을 해 주고, 신들이 일을 해 주고,
하느님이 일을 해 주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을 키우려고 하는 것입니다.
너한테 돈을 많이 주려고 하느님이 작업하는 게 아닙니다. 너를 키우고, 사람을 키우는 게 목적입니다.
그러면 이 스승님 하고 인연이 되는 이유가 무엇이냐 하면, 사람을 만들어 주려고 인연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서 우리가 사람이 돼 가느냐? 이 질문 안에도 그런 게 있습니다.
너한테 주어진 환경을 잘 흡수를 해야지, 네 영혼의 질이 좋아지는 것입니다.
영혼의 질이 좋아져야, 사람이 큰다. 성장한다 하는 것입니다.
육신은 밥만 먹어도 구동이 잘 됩니다. 밥을 먹어서 구동이 되는 것은 기본이고,
내 영혼의 질량이 좋아져서 구동이 되는 것이, 이제부터 확장성이 일어나고,
이것이 이 몸이라는 연장을 굉장히 우수하게 쓸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연은 사람, 너희들을 위해서 있는 것이고,
너희들을 위하는 것은, 너희들이 성장하는 성장하는 것을 얘기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돈이 없는데, 스승님이 돈 좀 주면 좋을 텐데.
스승이라는 자는 돈이 없게 돼 있습니다.
돈이 없는데, 돈을 여기에서 내놓으라고 하면, 번지수를 잘못 찾아온 것입니다.
스승님은 우리보다 돈이 더 없습니다. 없으니까,
내가 스승님 하고 갈라 쓰려고 오는 것은 괜찮지만, 조금 용돈을 드리고 이런 것은 괜찮지만,
스승님한테 용돈 받으러 이만큼 많이 오면 나는 징그러워서 어떻게 삽니까?
스승님은 어떤 사람이냐? 우리를 키워주는 사람이 우리 스승님입니다.
그러면 하느님은 어떤 사람이 하느님이야? 우리를 키워주시는 분이 하느님입니다.
우리가 따질 때, 종교적으로 부처님은 무엇을 하는 게 부처님이냐?
우리를 키워주시는 분, 가르침을 주는 게 부처님이고,
나를 저 아파트 사게 해 주는 분, 그것은 부처님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느님도 아닙니다.
그런 것은 우리 서인들이 그렇게 해 주려고 합니다. 서인들이 뭐냐? 우리 조상들입니다.
조상신들은 내가 뭐를 가질 수 있게 해 주려고 합니다.
왜? 조상님들은 그렇게 밖에 알 수가 없습니다.
돌아가시기 전까지 내 새끼 좀 잘 사는 걸 보고 죽으려 했거든요.
내 새끼가 좀 더 이루는 것을 못 해 줬다고, 이것을 한을 가지고 갔습니다.
그러니까 이 집착 때문에, 내 옆에 있는 게 조상입니다.
우리 자손들이 경제라든지, 이런 것을 더 가지게 해 주는,
그것을 잘 사는 것인 줄 알고 돌아가신 분들이 조상들이라서,
조상이 오면 물자라든지, 이런 것을 이루어주려고 합니다.
그러니 이루어주는 것은 조상들이 하면 되지, 천신들이 그렇게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천신이라든지, 조금 높은 신이라든지, 이런 분들은 나를 재물을 이뤄주려고 하는 게 아니고,
나를 키워주기 위해서 있는 것입니다. 그게 큰 신이라고 이야기하고,
하느님은 우리를 인간 육신을 세워 가지고, 인간이 사람이 되게 하려고,
하느님은 사람으로 키워내려고 혼신을 다 하는 것입니다.
스승님도 하느님 하고 똑같은 그러한 맥락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하느님이다. 이 소리가 아니고, 하느님 밑에서 교육을 받아 스승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면 나는 하느님을 닮아야 됩니다. 그래야 하느님 밑에서 수행한 게 맞지요.
물자를 이루려고 달려들면, 이것은 하느님 밑에서 공부한 사람이 아닙니다.
도술, 도인, 도사, 그러한 서인들한테 같이 공부를 했다면, 물자를 이루어주려는 것입니다.
그런 것들이 좀 다른 것입니다.
이러면 이해가 좀 됐나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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