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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 앞에서 말을 하려면 떨린다. (홍익인간 인성교육 4166강)홍익인간 인성교육 2024. 3. 3. 11:45
정법 강의 4166강 사람들 앞에서 말을 못 하는 것은,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훈련을 못해서 그렇습니다.
우리가 친구를 만나서 수다를 떱니다. 그러면 나는 지금은 말을 못 하다가, 조금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내가 크는 중입니다. 내가 뭔가 못하고 있으면 짝이 옵니다. 나를 키우는 공부를 시키는 것입니다.
나는 얌전합니다. 만나는 사람은 얌전한 사람이 절대로 안 만나집니다.
상대적으로 나보다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을 만납니다.
그런데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은 얌전한 나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파트너로 오는 것입니다.
여기서 내가 짜증 나서 안 만나버리면, 네가 못 크는 것입니다. 이 사람을 잘 만난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상대적으로 이 사람만큼은 말을 못 하지만, 조금 큽니다.
그래서 정법 공부하는 사람들이 JB클럽을 만들어서 모여서 활동하게 한 것입니다.
여기에서 안 하던 것을 조금씩 연습하라는 것입니다. 같이 연구하고, 같이 정법 공부를 하면서.
너희들이 도반이 됐기 때문에, 같이 만나서 익히고,
또 우리가 뭔가 모자라는 것은 여기서 실적을 쌓으라는 것입니다.
못하던 발언도 한 번씩 해 보고, 그래서 뜻이 맞는 사람들끼리 모이라고 한 것입니다.
상대 앞에서 말을 잘 못하는 사람은, 뭔가 잘 들을 수 있기 때문에, 많은 것을 쓸어 담고 있습니다.
이 사람이 언제부터 입을 떼기 시작하면, 안에 많이 담긴 것이 밖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처음에 할 때는 말이 잘 안 나오는데, 어느 정도 하다 보면 언제부턴가 말문이 탁 터집니다.
이것이 어떤 때냐? 말문 도사가 내려선다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설명을 기가차게 잘합니다.
이렇게 해서 멘토가 될 수 있고, 이제 사람을 대하는데 두근두근 안 합니다.
우리는 원래 신의 제자들이니까 공부를 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우리만 사는 게 아니고, 우리 조상들과 더불어, 또 우리 서인들과,
나를 보호하는 신장들까지 전부 다 연결되어 있습니다.
동자, 선녀라고 하면 이상하게 생각할 게 아니고, 연결되어 있는 신장들과 도인 도사들이 있고,
할아버지들이 있고 하니까, 이 분들의 심부름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육신에 들락거리는 것은 보통 동자 선녀가 들락거리고,
그렇게 해서 어떤 동자 선녀가 들어왔을 때는, 막 갑자기 우울할 때도 있습니다.
어떤 때는 이유 없이 성날 때는, 동자 이 녀석이 저기 가서 혼나고 온 것입니다.
내가 괜히 성나는 것입니다. 그것은 동자 자기가 성나는 것을 지금 내 몸이 느끼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알면, 너 무엇 때문에 혼나고 왔냐? 씩씩거리지 마라. 이렇게 한 번 하면, 그만 성이 안 납니다.
우리 제자들은 항상 이렇게 변화무쌍할 때가 있는데, 이럴 때는 애들이 발복 할 때도 있고,
서인들이 이제 발복 하기 위해서 들락거릴 때가 있고, 가만히 놔둘 때가 있고 이런 것입니다.
그러니까 발복 한다는 소리는, 어떤 일을 준비하고 있을 때 발복이 됩니다.
그러면 그때부터 발복을 하면, 이제는 사업을 해도 잘되고, 공부를 해도 잘되고,
재주를 갖추어도 잘되고, 이런 일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때부터 장사도하고 싶고 그럽니다.
그래서 장사를 하면, 그냥 돈이 막 벌리고, 손님도 많이 들어오고 그럽니다.
이것이 발복 할 때입니다. 공부시킬 때가 있고, 발복 할 때가 있는 것입니다.
때를 잘 알고 어떤 일을 해야 한다 이 말입니다.
우리가 침체하고 있을 때는 공부시킬 때고, 뭔가 하고자 하는 자신이 있을 때는 발복 할 때이니까,
뭐든지 자신 있게 하면 된다.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홍익인간들은, 일단 나 혼자 사는 것이 아니고, 신들과 연결돼서 우리를 이끌고 있으니까,
이런 것을 잘 활용할 줄 알면, 굉장히 우수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줄이 있다고 그러니까, 뭔가 이렇게 굿을 해서 모셔야 되나?
그 사람들에게 걸리면, 그 사람들은 모시는 것밖에 모르니까, 그렇게 가르쳐주는 것이고,
스승님을 만나니까, 그것을 넘어서서 어디까지 할 수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을 가르쳐주는 것입니다. 이런 게 다른 것입니다.
땡초를 만나면 땡초를 따라야 되고, 그 땡초가 아는 게 그만큼밖에 모르는 것입니다.
그것을 가지고 우리에게 자꾸 이야기를 하니까, 우리는 그렇게 가야 되는가 보다 끌려가다 보면,
한 10년, 20년, 땡초하고 놀다 보면, 날 새는 것입니다. 젊음이 다 가버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때 이 사람을 만날 때 이 사람이 이야기하는 것을 조금만 공부를 했더라면,
아, 그것은 아니다. 이러고 피했더라면 더 좋은 선생을 또 만났을 텐데,
너는 실력이 그것밖에 안 됐으니까, 그 사람을 따라간 것입니다. 기초 공부가 그만큼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나는 사람들 앞에서 말을 잘 못한다 이러면,
아직까지 그 말을 할 때가 안 됐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선녀라든지, 나에게 와서 나를 그렇게 제어를 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공부를 하면서 인연들을 만나기 시작하면,
조금씩 조금씩 선녀도 크고, 나도 크고, 조금씩 열린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지금 정법을 만난 것입니다. 말 못 하던 사람도 말을 할 줄 알게 된다는 말입니다.
왜? 많은 질량을 아는 방법이 다르기 때문에, 저 사람들에게 설명할 수 있는 실력이 스스로 만들어집니다.
저 사람들에게 내가 주장하는 게 아니고, 설명을 할 줄 알아야 됩니다.
왜? 스승님에게 공부를 했으니까. 제자는 스승을 닮는 법입니다.
스승님 강의를 쭉 듣다 보니까, 나도 이렇게 설명을 할 수 있습니다.
스승님은 산에 죽으러 들어가기 전까지, 세상에 말을 안 했던 사람입니다.
누구 하고도,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자기가 가까이 다가왔지, 나는 가까이 안 갔습니다.
세상을 살며 내가 항상 도도했습니다.
너는 나에게 가까이 와도, 나는 너를 가까이 안 해 줬습니다.
상대가 어떤 행위를 하는데 나에게 거슬리면, 나는 말로 주고받아서 풀지를 않았습니다.
듣다가 그만하라고, 그만하라고, 두 번 하고 나면, 세 번째 또 그러면,
들고 엎어버리고 나가지, 말을 안 합니다. 이렇게 했던 사람이 죽으러 갔다가 죽지 못하고,
내 자아 수행을 하고 나오니까, 이제부터 사람들의 말을 들을 줄 알고,
그것을 듣고, 사람이 어떤 답을 원한다면, 답을 그 사람이 이해되게 설명할 줄 아는 것입니다.
상대의 근기에 맞게 이해가 되게 설명을 하는, 이것을 안 할 것 같으면, 입을 떼지 말아야 합니다.
상대를 이해시키기 위해 말을 하는 것이지, 이해를 못 시킬 것 같으면 말을 안 해야 됩니다.
왜? 내가 저 사람에게 말을 했는데, 이해를 못 하게 되면, 이것이 돌아서 나에게 온다는 말입니다.
저 사람을 이해를 못 시키면, 저 사람이 갑갑해집니다.
그러면 이것이 들어가서 안에서 싹 소화가 안 되고, 이것이 돌아서 갑갑해진 기운을 물고 나에게 옵니다.
이렇게 나를 치고 들어오면, 내가 갑갑한 것을 느껴야 되기 때문에,
내가 잘못한 것을 내가 받게 돼 있습니다. 그래서 이해를 시킬 수 있는 말이면 해야 되지만,
이해를 시킬 수 있는 말이 아니면, 입을 닫아야 됩니다.
갑갑한 게 자꾸 치고 들어와서 쌓이면, 내 안에서 종양이 생깁니다.
우리가 암이 왜 오는지 그 원리를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그 근본적인 것은 치료를 안 하고, 암을 퇴치하려고만 들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일어날 때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그 답을 풀어야 됩니다.
약으로 암을 퇴치하고, 기술로 퇴치만 하면, 다른 불상사가 또 일어납니다.
이것은 옳지 않습니다. 신약도 개발해야 되지만, 왜 오는가 근본을 찾아야 됩니다.
내가 저 사람에게 조금 안 좋은 행위를 해서, 저 사람을 탁하게 했다면,
그 기운이 돌아와서 나를 칩니다. 저 사람이 기분 나빠서 나를 쏘아봤다면,
이것이 날아오는 것입니다. 이것이 양이 쌓이게 됩니다.
이러면 내 신체에서 종양이 생깁니다. 왜? 기본 씨가 나에게 있거든요.
그래서 이런 것들이 암이 발복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서, 내가 어려움을 겪는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말 한마디가 얼마나 중요한가?
인간이 말을 한다는 것은 상대를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고,
이 자연을 움직일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게 말 에너지입니다.
사람이 말하는 것은 에너지 덩어리입니다. 어떤 에너지냐? 비물질 에너지입니다.
이 말 한마디가 세상을 바꿀 수도 있고, 나를 죽일 수도 있고, 저 사람에게 용기를 줄 수도 있고,
살릴 수도 있습니다. 이것이 말의 힘입니다. 질량의 힘입니다.
말을 잘하는 것을 우리가 배우는 것은, 굉장한 힘을 얻는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정법을 자꾸 갖추면, 이런 것이 전부 다 정리가 되고,
내가 나갈 수 있는 질량을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질량이 모자랐던 것입니다.
이해가 됩니까?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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