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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본질 - 기도와 공부의 차이 (2/2)(홍익인간 인성교육 3993강)홍익인간 인성교육 2024. 12. 24. 11:11
https://youtu.be/CUgg3hAPnRA?si=Tl8STxD2BVxNgJ5z
집안이 어려워지니까 어디로 갑니까?
남자들이 저 교회를 많이 갔습니까? 여자들이 교회를 많이 갔습니까?
70% 이상이 여자들이 교회를 가고 절에 가는 것입니다.
왜? 내가 모르니까, 답답하니까, 어려워지니까, 먼저 찾아 나서는 게 여자입니다.
여자들이 공부를 했어야 되기 때문에, 정신적인 지도자들이라고,
거기에는 일반지식보다 지혜가 있고 더 큰 법이 있는 줄 알고 간 데가, 여자들이 공부하러 간 것입니다.
남자는 이룰 수는 있지만, 운용을 할 때는 여자들이 이 지혜를 열어줘야 되기 때문에,
그렇게 해서 운용이 될 때, 이것은 아주 빛나는 일이 일어납니다.
여자들이 교회에 가고 절에 갔는데, 거기에서 아멘 하라고 하니까, 아멘하고 있은 것입니다.
언제까지 이러니까, 하여튼 하고 있어 봐라. 이렇게 된 것입니다.
절에 가니까 절하라 그러고, 반야심경 외우라 그러고, 읽으라 그러고, 잘 읽는다 그러고,
그다음에 금강경을 읽으라 그러고, 그러다 보니 30년이 갔습니다.
그것을 읽어 가지고 네가 지혜가 안 열리고, 생활에 적용이 안 됩니다.
그러니까 시간은 지나가는데, 자꾸 남편은 뭔가를 저지르는데,
내가 뭘 알아야 논리적으로 이야기를 해서 바르게 잡아줄 텐데,
이것이 안 되니까, 이제 집안이 이상해지는 것입니다.
집에 오니까 여자하고 말이 안 통하지, 뭔가 하려니까 반대만 하지,
그러니까 다른 데 가서 바람나는 것입니다. 말 통하는 데를 찾아다니는 것입니다.
이런 일이 지금까지 벌어지는 것입니다.
여자들이 이 선지식에 찾아갔으면, 생활 속의 공부를 가르쳐야 됩니다.
당신은 자연의 공부를 하더라도, 이 사람은 생활 속에 살던 사람이 오지 않았습니까?
그러면 자연 속에 공부를 하면서 어느 정도 질량이 찬 것 같으면,
생활 속의 공부는 30% 미만의 공부이기 때문에, 이것은 얼마든지 가르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공부를 했다고 하는 정신적인 지도자들이,
30% 질량 안에서 공부하는 데 멈춰버린 것입니다. 70% 공부한 자가 안 나왔습니다.
그러니까 생활 속에 사는 사람들이 오는 것도 바르게 못 가르친 것입니다.
못 가르치고, 나하고 같이 저쪽에 빌자, 기복 하자. 이렇게 된 것입니다.
기복 하자는 너는 선지식이 아닙니다.
우리가 기복을 한다든지, 공부를 지금 하고 있다면, 이 사람은 70% 갖춘 사람이 아닙니다.
70% 딱 갖추고 나면, 그다음에는 몸소 사람을 가르치러 나와 갖고,
사람을 이롭게 하고, 행할 뿐이지, 행 속에서 스스로 일어난다 이 말입니다.
마무리 공부는 행 속에서 스스로 일어나고, 그다음 행이 일어나고, 그다음 인연이 오고,
또 그다음 행이 일어나고, 이런 식으로 계속 이렇게 해서 마지막까지 일어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회에 나와서 뭔가 적용을 할 때는 70% 갖춘 자가 적용을 해야 됩니다.
그러면 밑에서 몰라서 헤매는 자는 30% 밑에서 헤매니, 이것을 바르게 살 수 있도록 가르치면,
위의 질량도 같이 묻어서 이끌어 주는 이것을 한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아직 빌고 있는 것은, 기도하는 것은, 뭔가를 얻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공부하는 것은 얻기 위해서 공부하는 것이 아니고, 나의 질량을 갖추기 위해서 공부하는 것입니다.
기도와 공부는 다릅니다. 수행 안에서도 기도와 공부는 다른 것입니다.
기도는 얻으려고 하는 것이고, 얻으려고 할 때는 너를 달아봅니다.
네가 백단위 질량을 얻으려고 하면, 이 백단위 질량을 줘도 되는지, 너를 다루어본다는 것입니다.
왜? 네가 공부한 게 아니고, 백단위 질량을 지금 얻으려고 하잖아요.
그러면 이것을 줘도 될지, 안 될지 다루어 보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나를 깨끗이 해서, 더 빌고, 더 낮추고 이럽니다.
그러니까 저만큼 겸손하게 낮추는 것을 보니까 줘도 되겠다. 해 갖고 신이 속는 것입니다.
주니까, 이것을 받아 나와서 또 제멋대로 노니까, 이제 다 까먹고 또 오는 것입니다.
두세 번 주니까, 이것을 계속 까먹고 오니까, 이제부터는 이 놈 안 되겠다 해서 안 주는 것입니다.
안 주니까 처음에는 7배 하다가, 108배하다가, 3천 배를 하는 게,
3천 번을 숙이니까 이제 좀 달라는 것입니다. 신들은 단순해서 그렇게 속았던 것입니다.
공부는 어떻게 되냐? 너를 갖추는 것입니다.
주고 안 주고를 따지지 말고, 나를 갖추는 것입니다.
이 원리를 알고 나면, 기복은 제일 낮은 걸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갖고 사회 잣대를 대보면 됩니다.
아직까지 목사들이 뭐를 주십시오. 이것은 최고 낮은 데 머물러 있다는 것입니다.
사회를 졸 줄 알아야 내가 크는 것입니다.
목사님들이고 스님들이고, 기복을 하고 있다면, 밤에 앉아서 뭐를 얻으려고 하면,
너는 공부를 해도, 기도를 해도, 30% 미만 짜리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직까지 이만큼밖에 성장이 안 됐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잘난 체 해도, 말에 현혹되면 안 되고, 뭘 하는 가를 보면 됩니다.
스님 요새 기도하십니까? 저녁마다 하지. 그러면 30% 미만인 것입니다.
이렇게 딱 쳐다보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기복 하는 자는 너하고 통합니다. 공부하는 자는 너하고 안 통합니다.
목사님 저녁마다 기도 하십니까, 기도는 왜 해? 내가 갖춰야지.
이러면 30% 넘어섰네. 이렇게 보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공부 상대인 것입니다.
내가 공부하는 사람들이 가서 도반으로 같이 의논할 수도 있고,
서로 질의문답을 할 수 있다.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제 사회를 잣대를 바라볼 때, 기복을 하고 있는 자는 기도를 한다는 것입니다.
나의 실력을 갖추고 있는 것은, 이 기도의 수준을 넘어서, 실력을 갖추는 도인 공부를 한다.
이것이 도인입니다. 도인 공부를 하는 게 나를 갖추기 위해서 공부하는 사람이고,
이런 사람은 기도를 안 합니다. 자연 속에 내가 혼자 앉아 있더라도, 항상 나를 공부를 하고,
사람을 접하더라도 내 공부를 하고, 뭐든지 공부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네 실력이 갖춰지면 어떻게 되냐?
기복을 하던 사람들이 도술을 얻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도술의 힘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어디에서 발복을 하고 힘을 쓸 수 있느냐?
기복 하는 사람한테 힘을 쓸 수 있는 것입니다.
도술을 가지고 있는 힘은, 기복을 하는 사람한테 힘이 미치고, 같이 논다 이 말입니다.
그런데 도 공부를 하는, 내 공부를 하는 사람은, 이 도술이 여기에 미치지를 못합니다.
왜? 자기보다도 기운이 더 큰 분이기 때문에, 여기에 너의 힘이 안 미칩니다.
도술이 강하다고 여기에 함부로 잣대를 갖다 대면, 너하고 기운이 부닥치면,
너의 도술을 잃어버린다.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도 공부하는 사람은 기복 하는 사람보다 기운 자체가 위에 있는 것입니다.
네가 도술이 있든 없든, 그래서 여기에 부닥치면 안 되는 것입니다.
부닥치면 네 도술이 떠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위험한 것입니다.
그래서 내 분수를 알아야 된다 이 말입니다. 그러면 내가 공부를 다 하면 어떻게 되냐?
이 공부를 다 해서 70%가 되면, 너는 도의 지식을 다 갖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도의 지식, 자연의 지식을 다 갖추고 나니까,
그다음에 이 밑의 것을 모두 다스릴 수 있는 힘을 갖습니다.
도술을 가진 사람도 다스릴 수 있는 힘을 갖고, 모든 중생을 다스리고,
이 아래는 내가 다스릴 수 있는 힘 자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너한테 어떤 말을 하든,
어떻게 대작을 해 오더라도, 내가 가만히 들어보고, 내 한 마디로 뭐든지 정리해 버린다는 말입니다.
말이 곧 법이 되는 사람이라는 말입니다.
실력을 가진 사람은 도술이 되는 게 아니고, 말이 법이 되는 것입니다.
도술은 임시방편으로 쓸 수 있는 힘이고, 법은 영원히 너희들한테 미치게 된다 이 말입니다.
임시방편이 아닌 네 일생에 미치게 되는 게 법의 힘이고,
그래서 말이 법이 되는, 그 사람이 입 뗀 대로 이루어집니다.
이것이 법의 힘입니다. 술의 힘과 법의 힘이 다른 것입니다.
그래서 법으로 모든 것을 다스린다.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앞으로 세상을 바라볼 때, 말에 현혹되지 말고, 잣대 대는 방법을 알라는 것입니다.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30% 미만. 이렇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하는 게 아니고 나는 나를 갖추기 위해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넘어섰다. 그분은 존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해됩니까?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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