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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죄란 무엇인가? (1/3)(홍익인간 인성교육 13939강)
    홍익인간 인성교육 2026. 2. 27. 11:34

    https://youtu.be/8WXFh_GPFQ4?si=Q0av_mQ8McZqLcoL

    천공 정법 13939강

     

    누구도 우리 죄를 대신할 수 없습니다.

    하느님도 우리의 죄를 대신할 수 없고, 하느님의 제자도 우리의 죄를 대신할 수 없습니다.

    왜? 우리는 개체신들이기 때문에 자기 몫의 자기 죄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 업이라고도 하고 자기 죄라고도 하고, 탁해진 에너지 질량이라고도 하고,

    모든 것은 우리가 죄라는 이름으로 쓰니까 죄라고 하는 것이고,

    이런 것들이 우리 원소들, 그러니까 비물질 에너지의 용어로 붙이기에는 제일 좋은 것이,

    비물질 원소 에너지, 이렇게 이야기하면 됩니다.

    이 비물질 원소 에너지들이 탁해졌다. 탁한 것을 가지고 정화를 하면서, 왜 우리가 탁해졌는가?

    이런 것들을 풀어가면서 우리는 육신을 가지고, 공부를 하고 연구를 하고, 성장을 하면서,

    대자연과 우리는 어떤 관계인가? 이런 것을 공부하기 위해서 인간 육신을 쓰고,

    하느님 하고 같이 이 탁한 기운을 풀기 위해 위해서 지금 공동 작업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우리 죄는 어떤 게 죈가? 원죄가 죄지 현재 일어나는 것은 죄가 아닙니다. 우리 활동입니다.

    활동인데 현재 일어나는 이 활동을 갖다가, 우리는 사기를 칠 수 있는 활동을 하는가?

    전쟁이 일어나고 우리는 죽는가? 누구는 우리를 죽이는가? 이것은 죄가 아니고 환경 속에서 활동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가 태어나서 예수께서 제자로 세상에 나와서 활동을 할 때, 예수께서 뭐라고 봤느냐 하면,

    노예를 운용하는데, 운용하는 사람을 죄인으로 봤고, 운용을 당하는 노예들을 위해서 산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러면 노예는 왜 노예 될 수밖에 없었는가를 우리는 찾아야 되는 것인데,

    노예는 당하는 것이고, 부리는 사람은 죄인으로 본다고 하면,

    이것은 구조적으로 그 시대에 그 공부를 하기 위해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입니다.

    우리는 희생이라고 하는 것이, 우리는 그 노예 활동을 하면서 죽임까지 억울하게 당했다고 하는데,

    내가 억울하게 당할 때는, 이것을 보는 사람들이 그것을 보면서 깨닫는 바가 있어야 됩니다.

    희생이라는 것은 성장을 하기 위해서 희생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깨닫지는 못하고,

    우리는 핍박을 받는다고만 가져가면, 희생한 사람들의 보람이 없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오늘날 이 사회에서 현대판 노예로 지금 살고 있으면서,

    우리는 저쪽에 운용하는 경제인들을 나쁜 놈이라고 이야기할 것인가?

    경제인들은 경제를 만지면서 활동을 해야 되는 것이고,

    우리는 그 안에서 활동하면서 무엇을 얻어야 되는 것인가를 찾아야 되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을 찾으려고 들지 않고, 경제인들은 나쁜 사람이라고 몰아 버리면서,

    지금 일생을 30년을 그 사람들을 나무라고 우리가 가고 있다면, 너희들이 과연 지식인들일까?

    오늘날은 우리가 전부 다 지식인들이기 때문에, 우리는 전부 다  연구원들입니다.

    그래서 로마 시대의 역사도 전부 다 우리한테 씨로 갖다 줬고, 우리는 그것을 안 봤나요?

    그 작품을 만들어 놓은 것을 접했고, 그것을 글로 써 놓은 것을 접했고,

    역사로 기록해 놓은 것을 접한 것이지, 우리가 당한 것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이런 걸 어떻게 우리가 보면서 그것을 풀어내는가가 우리가 할 일이지,

    인류의 역사는 어떻게 흘러왔으며, 이 흘러온 것을 우리가 어떻게 봐야 되는가?

    이것은 오늘날의 지식을 갖춘 우리가 봐야 되는 것입니다.

    그 지식을 우리는 접하지 않은 사람들이 그것을 볼 수 있냐? 없습니다.

    인류가 기록해 놓은 역사를 본 사람들, 그게 지식인들이거든요.

    이 사람들이 이만큼 질량이 크게 태어나서, 이것을 전부 다 점검하고 있는 것입니다.

    질량이 작게 태어났으면, 우리는 지식을 접할 수가 없습니다.

    지금 이제 이 인간 육신을 쓰고 온 홍익인간들은, 질량이 크게 태어났기 때문에,

    이런 인류가 살았던 기록들을 전부 다 우리한테 보내줘서,

    이것을 분별해서 바르게 정리해 달라고, 우리한테 보내준 것입니다.

    그렇게 했는데 기독교에서는 예수께서 하신 일을 좀 북돋아 올리려고,

    뭔가 우리 죄를 전부 다 가져갔다고 하고 싶겠지만, 예수라는 분의 희생은,

    그 안에서 우리가 무엇을 찾아야 되는가가 중요한 것이지,

    예수께서 만일에 지혜로웠다면, 누구 편들지 않았습니다.

    예수께서 만일에 오늘날 지식을 갖춘 우리 성장한 사회에서 생각을 할 때,

    그 시대는 그 시대에 맞게 생각을 하는 것이고, 오늘날은 오늘날에 맞게끔 생각하는 것이거든요.

    우리가 생각을 할 때, 예수가 조금 지혜로웠다면, 누구 편을 드는 게 아니고,

    오히려 사람들이 불쌍하게 여겨졌으면, 왜 너희들은 지금 불쌍하게 밖에 살 수 없는가를 가르쳐야 되고,

    그러면 저쪽에 저 관리자들이고 지배자들이, 예수는 지배자들을 만날 수 있는 그런 환경이 된다면,

    지배자들한테 지혜를 줘 가지고, 백성들한테 존경받는 삶을 살게끔 운용을 하도록 도왔다면,

    그러면 노예들이 핍박받는 삶보다는 존경받게 해 주면, 노예들을 잘 관리하며 이끄어주지 않겠는가?

    만일에 그렇게 했다면, 생각을 그쪽으로 돌렸다면,

    3년 만에 내가 형벌을 받으면서, 인생을 마감하기는 않았을 것입니다. 예수는 활동을 3년밖에 못했습니다.

    저 사람들은 죄인이고, 너희들은 불쌍하니, 내가 너희들을 구하러 왔다고 했습니다.

    너희들을 구하는 방법은, 너희들 생각의 질을 높여 가지고,

    이 사회에 필요한 활동을 하면서, 핍박받지 않게 해 줘야 되는 것입니다.

    그런 것들을 어떤 논리로 가져가 가지고 우리한테 그렇게 하다 보니까,

    우리가 지식이 모자랄 때는, 그런가 보다 하고 무조건 따랐다는 것입니다.

    예수가 잘못했다는 소리는 아니고, 그 안에서 뜯어보면 뭐냐 하면, 그래도 인생이라고 하는 것이,

    많은 백성들을 내가 봤으니까, 어려운 백성들을 위해서 내가 살다가 갔으면,

    내가 백성들을 위해서 살고 가는 게 훨씬 값지고 질이 높죠. 만일에 내가 작품대로 가 맞다면,

    이런 것들은 전부 다 사람들한테 인식하게 하려고 작품을 그린 것이거든요.

    그런 게 맞다면, 그러면 예수께서 3년 동안에 무엇을 위해 살고 갔으며,

    그것을 우리가 어떻게 평가해 줄 것인가?  그렇게 해서 예수께서는 희생 속에서 많은 걸 생각하게 해 가지고,

    2천 년 동안 온 인류가 같이 생각을 할 수 있게 했다는 그 자체가 엄청난 공입니다.

    그러면 2천 년 동안 내려오면서, 그 공을 가지고 우리는 그 안에 빠져들고 있는가?

    아니면 그것을 분석하고 있어 가지고, 미래를 바르게 살게끔 이끌어주고 있는 게 맞는가?

    선조들이 아무리 말을 할 때 지혜롭게 살았다고 하지만,

    선조들은 지혜롭게 산 사람이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왜? 그 시대는 지식이라는 것을 다 생산해 갖고, 지식을 갖추면서 사는 시대가 아니었었고,

    예수께서도 한때의 젊은 나이에도 바깥세상 구경을 하고 왔기 때문에,

    그쪽에 갇혀있는 노예들을 위해서 뭔가 말을 해 줄 게 많고, 이렇게 해서 그 활동을 했던 것입니다.

    싯달타 부처도 바깥세상을 돌아보고, 내가 태어난 곳에 돌아와 보니까,

    너무 모르고 사니까, 나는 바깥을 둘러본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그걸 고행 속에서 많은 걸 접하고 와 가지고,

    도파들이 깨어나게 하려고, 혼신을 다해서 노력을 한 것이고,

    예수께서도 사라졌다가 돌아왔을 때, 노예를 일깨우기 위해 노력을 했던,

    나한테 준 원력과 힘을 거기에 쏟았던, 그러한 시대가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가 잘못했다는 게 아닙니다. 그 시대에 활동을 할 만큼 했는데.

    이걸 갖고 뒤에 따르는 많은 사람들이, 또 그것을 좋게 보는 사람들이, 작품을 많이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오늘날 이런 작품이 돼 버린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너희들 죄를 내가 다 가지고 가노라. 한 적이 없습니다.

    예수가 진짜로 말씀하신 것 중에서 진짜로 우리가 잊지 말아야 될 것은,

    신이시어 나를 버리시나이까? 이 소리를 한 게 예수님 말씀이십니다. 다른 것은 다 작품입니다.

    신이시어 나를 버리시나이까? 왜? 영적으로 발달하게 해서, 내가 언제 잡혀갈 것인지 알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피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잡혀 갔고, 그래서 곤욕을 당했고, 그래 갖고 형벌에 가셨고,

    그런 것들이, 예수께서 엄청나게 힘든 때가 있었던 것입니다.

    하느님을 믿고 제자로서 따랐지만, 내가 지금 잡혀갈 수 있는 환경을 나한테 영적으로 가르쳐주니까,

    그때 영이 굉장히 맑고 깨끗했습니다. 날자가 다가오니까, 그 전날 밤에 한 기도가 있습니다.

    신이시어 나를 버리시나이까? 피땀 흘리며 아주 긴장을 할 때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때 긴장하면서 피땀 흘리며 기도한 것이, 그날밤에 용기를 주고, 

    하느님에 직접 대면을 하고, 이것은 아마 작품에 없습니다. 예수께서 말씀을 안 하셨으니까.

    그런데 직접 알현을 했습니다. 너무 힘들어하지 마라.

    너의 오늘 희생이 큰 미래를 이끌 수 있는 거름이 될 테니. 너는 내 품으로 돌아오너라.

    그래 가지고 예수님이 그때 피땀 흘리며, 긴장하던 걸 전부 다 놓은 적이 있습니다.

    나는 수행자이기 때문에, 있었던 환경을 전부 다 나한테 보여주고 가르쳐준 사람입니다.

    그래서 이걸 내가 이렇게 말한다고 해서 이상하게 볼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제자들은 원래 공부하는 것들이 다르기 때문에, 이 사람도 그런 의문이 있었던 사람입니다.

    그것을 풀 때 그 공부를 한 것입니다. 크게 희생을 했구나.

    그때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환경 때문에 그렇게 한 것이고,

    그런 걸 가지고, 우리를 많이 일깨우고, 공부하게 만들었던  그런 환경들이 주어진 것입니다.

    만일에 예수께서 거기서 더 활동하며 30년 이상 살았다면,

    안 좋은 꼴을 너무 많이 보고 가서, 돌아버릴 수도 있는 깨끗함 분이었습니다.

    깨끗함으로써 하느님과 직접, 자연과 직접 소통을 할 수 있는 환경을 가져올 수 있었던 제자이기 때문에,

    아주 위대한 제자 맞죠. 시대적으로 위대한 제자들이 그런 분들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가 위대한 제자들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되냐?

    과거에 남겼던 이러한 역사의 모든 지식을 쓸어마신 우리가 그분들의 공로서 하나하나 바르게 쳐줌으로써,

    앞으로 미래에 우리가 해탈할 수 있는, 우리 형제들과 자손들을 바르게 살게끔 이끌어주는 데,

    우리가 혼신을 다하는 그런 연구를 해야 될 것 아니냐? 이게 맞냐 옳으냐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왜 그 시대에 그분들이 그렇게 희생을 하고 가셨는지, 우리 부모들은 왜 이렇게 희생을 하고 가셨으며,

    우리 왕들은 왜 그렇게 남을 죽이고, 완 자리에 갔다가 내가 죽임을 당하고, 또 왕이 됐다가,

    이런 짓을 수없이 몇천 년 동안 했는지? 이 세상을 일깨우기 위해서 그런 환동을 했는데,

    아직까지 그런 걸 분별하는 게, 우리가 너무 약하다 이렇게 보는 것입니다.

    우리는 누구냐? 그러한 역사를 전부 다 받아들여서 연구를 할 수 있을 만큼 질량이 크게 태어난,

    천손들 중에서도, 홍익인간 지도자들로 태어났음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장할 때는 이런 것을 보면서, 위대했다는 말을 들으면서 무릎도 꿇겠지만,

    다 성장을 하고 나면, 이 분들의 공로를 쳐줄 것은 쳐주고,

    역사를 바르게 봐서, 그런 것들을 바르게 우리가 접할 줄 아는 그런 천손들이 돼야 되고,

    홍익인간 지도자들이 돼서, 앞으로 미래의 후손들한테 바른 걸 남겨서,

    그런 것들이 또 교리가 되고, 이런 것들이 도 역사를 만들어 주는, 그렇게 돼야 되는데,

    지금 우리 홍익인간 지도자들이 어떻게 하고 있느냐? 또 인류의 홍익인간들이 무엇을 했느냐?

    아직까지 십자가 앞에 무릎 꿇고 있으니까, 우리도 같이 무릎 꿇고 있고,

    이것을 벗어나는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고, 저 부처님이라고 무릎 꿇고 있어야 되는 걸로 살고 있고,

    선배들이 무식할 때 하던 것들이, 2천 년 전에 하던 짓을 오늘날에 최고 후손들이 태어나 갖고,

    그것을 따라 하다가 죽어버리면, 우리가 한 일은 뭐냐? 우리가 인류에 남긴 건 뭐냐?

    비나리로 살다가 빌다가 죽은 조상들이 있었다. 이걸 역사로 남길 것이냐?

    이런 철학을 일으켜서 새로운 세상을 쳐다보는 걸, 그렇게 이루어서 뭔가 창의력을 일으켜서,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미래 역사를 남겨주는 일을 했는가?

    안 그러면 아직도 신들이라고 구걸을 하던데, 우리도 같이 따라 하다가 죽을 건가?

    지금 지식을 갖췄다면, 우리는 불교를 믿고 있어도, 기독교 이야기도 듣고, 

    뭐 다른 이야기도 다 듣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뭐냐 비교 종교학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한테 인류 문화를 다 들어오게 해서 우리가 접하고 찾는 것들이 비교종교학이라고 이야기하고,

    모든 사람들이 이렇게도 살고 저렇게도 사는데, 이것이 과연 바르게 하고 있는 것인가?

    아니면 이것을 총정리해 가지고, 우리가 같이 이해하면서 하나로 뜻을 만들어 가게끔 만들어줄 것인가?

    나는 이 신한테 매달리고, 저기는 저 신한테 매달리고, 우리 신이 최고라고 남을 죽여가며 싸우기도 하고,

    지금 이것이 옳은 것인가? 너희들이 진정 하느님의 제자더냐?

    너희들이 진정 부처님의 제자더냐? 이 말입니다.

     

    2편에서 계속.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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