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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연은 왜 어렵게 만든 후 배우게 하나요? (홍익인간 인성교육 14035강)
    홍익인간 인성교육 2026. 5. 26. 11:12

    https://youtu.be/IbS6tHufRGg?si=g0Q0XPbSspgMT1B5

    천공 정법 14035강

     

    이 3차원은 누가 빚었냐 하면, 우리가 빚었습니다.

    이 3차원을 하느님이 빚은 게 아닙니다. 우리가 빚었습니다.

    이걸 말로 하려면 복잡하고 긴데, 그걸 길지 않고 대충만 스승님이 알려주면,

    3차원을 빚은 것은 신들이 빚었습니다. 신들. 

    신께서 빚어놓은 게 아닙니다. 신께서는 뭐를 해 놨냐 하면, 자동 시스템으로 해 놓은 게 하느님입니다.

    그렇게 이 우주가 에너지로 꽉 차 갖고 에너지를 빚어 놨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 에너지가 우리 신들이, 지금 인간으로 와 있는 것이지, 우리 영혼들이고,

    우리가 신들이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천신들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우주를 운용하는, 큰 우주에 우리가 역할을 할 때는 천신님들입니다.

    천신님들인데 지금 지상에 와 갖고 이렇게 있으니까, 

    천신님이 못 되고, 좀 탁한 신들이 돼 갖고, 지상에 와 있는 것입니다.

    천신이 탁하면 천신이 되나요? 천신이 탁한 게 천신이냐고요? 이것은 좀 이해가 다가오죠.

    맑아지면 천신이 되고, 탁해지면 구신이 됩니다. 탁한신, 구신.

    그러니까 우리가 탁해졌기 때문에, 지금 구신으로는 안 봐도,

    이 대자연에서 우리 30%가 탁해지니까, 이 거대한 대자연의 에너지가 변동수가 일어난 것입니다.

    우리가 탁해졌기 때문에, 우리가 그 변동수를 일으켜 버린 것입니다.

    이것은 자동 변동수가 일어나게 돼 있습니다. 그래서 3대 7의 법칙이라는 게 있는 것입니다.

    대우주의 운행의 법칙은 3대 7의 법칙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지금 여기 지상에 와 가지고,

    지구가 지상이 아니고, 이 모든 은하계, 대우주에서 물질에너지로 지금 운행되고 있는 저 별들,

    저쪽의 은하계, 우리 은하 말고 밖에 다른 은하, 이런 것들이 전부 다 물질이 변동 물질 우주입니다.

    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전부 다 지상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걸 우리가 만든 것이라는 말입니다.

    천지창조 자체가 우리 때문에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왜 여기에 와서 무엇을 한다는 말이냐?

    네가 잘못하면 아픈 것을 알게 하는 것입니다. 잘못 운영하는 게 아닙니다.

    그러면 처음부터 알게 하고, 그렇게 살게 하지, 왜 그렇게 몰라 가지고 힘들게 하고, 어렵게 하느냐? 하는데,

    알게 해 갖고 잘살게 할 것 같으면, 뭐 하러 너희들을 여기에 가둬 가지고, 너희를 훈련시키고,

    이해되게 만들고, 깨치게 만들려고 들겠습니까? 그냥 놔두지.

    왜 지상에 보내 놓고, 이런 걸 경험하게 합니까? 그냥 놔두지.

    그게 운요의 법칙입니다. 지상에는 내가 잘못하면 아프고, 힘들고, 이렇게 하게끔 자동으로 빚어놓은 것입니다.

    그러면 옳은 것을 가르쳐주면 안 됩니까? 옳은 거 가르쳐주면,

    옳게만 하고, 나중에 아픔도 모르고 또 천신으로 갈 것 아닙니까?

    아픈 것도 알아야죠. 우리가 지금 탁해진 게 왜 탁해졌다는 것도 이해를 하면서,

    내가 지금 내 자리에 못 있고, 여기에 와 있는 이유를 일깨워 줘야 될 것 아닙니까?

    이것을 비유를 해서 이야기를 하면, 우리가 사회에 살면서 교도소에 사는 사람들 있잖아요.

    이 사람들을 왜 거기에 넣어 놨겠어요? 거기에서 내가 왜 여기에 와서 이렇게 살아야 되는 되는지,

    이해되게 가르침을 주는 사람이 없어서 그렇지, 그런 것을 뉘우치고 이해되게 해서,

    사회에 같이 사는 사람들하고 잘 살게끔 뭔가 찾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교도소만 있는 게 아닙니다. 중 교도소, 병원에 입원해 있는 사람들, 병원도 교도소입니다.

    그쪽에 눕혀 놓고, 교화되라고, 공부하라고, 내가 왜 아파서 여기에 왔는지를 깨우치라고,

    지금 여기에 보내 놓은 것입니다. 그러면 거기서 조금 덜한 교도소가 있죠.

    교회, 절, 절에 가서 절 자꾸 하죠. 너 교화소에 간 것입니다. 어떤 교화소?

    네가 환자가 돼 갖고 거기에 가서 절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절에 가서 뭔가를 내가 좀 얻으려고, 절도 하고 비굴하게 하잖아요.

    왜 내가 이런 것을 하는지 깨우치게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서 사는 게 좋은 건가요?

    절에 가서 돌멩이한테 절하고, 잘난척하는 스님한테 한마디 들어가며 있어야 되고,

    그게 내가 삶이 좋은 건가요? 교회에 가서 주여 주소서. 뭘 줘요? 이게 지금 우리가 잘 사는 것인가요?

    네가 왜 여기에 와서 네가 필요한 것을 얻지를 못 하고,

    이쪽에 와서 이 짓을 해야 되는 지를 깨우치라고 거기에 보낸 것입니다.

    병원에 눕혀 놓은 것은, 왜 아파 가지고 자빠졌는지 깨우치라고.

    교도소는 내가 왜 여기 들어와서 갇혀 갖고, 안 그래도 감방에 왔는데, 더 감방에 들어와 있는지 깨우치라고.

    자유가 없이 나보다 힘센 게 때려도, 할 수 없이 맞으라고. 거기는 눈길 잘못했다고 맞습니다.

    왜 패는데요? 눈길 바로해. 사회에서는 거기까지는 아니거든요.

    그런 것들이 교화소에 와서, 중 교화서, 대 교화소에 들어가, 지금 이러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에 다 왜 왔나요? 길을 못 찾으니까, 이제부터 길 찾으려고 와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요새는 간이 조금 커지기도 하고, 좋기도 하고, 이렇잖아요.

    우리가 깨우치면 좋아지고, 더 잘 살 길이 열리고, 삶이 더 좋아진다는 말입니다.

    안 어려우면 공부 안 합니다. 사람에 따라서 근기가 나는 요만큼 어려워지면 다시 공부하는 사람이 있고,

    이 사람은 조금 순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나는 이만큼 어려워져야 공부하는 사람이 있고,

    되게 어려워져야 공부하는 사람이 있고, 자빠져야 공부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이만큼의 질량을 갖고는, 자빠져도 공부시켜 줄 사람이 없어 갖고, 더 힘든 사람이 많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미워서 그러는 게 아니고, 깨우치라고 그러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 갖고 깨우치고 나면, 그다음에 삶이 엄청나게 좋아집니다.

    하느님이 우리가 미워 가지고 이러는 게 아니고, 사랑스러워 갖고, 그래서 우리를 이렇게 이끌어주는 것이니까,

    오해는 하지 말고, 스승님은 하느님의 특수 제자로 세상에 온 사람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은 스승님이 잘 압니다.

    스승님도 하느님을 모를 때는 원망 많이 했습니다. 지금 저렇게 질문하듯이 원망 많이 했습니다.

    그 질문을 지금 이렇게 하지만, 나는 그렇게 안 했습니다. 죽어 가면서 했습니다.

    나는 죽으러 가서 달려든 게, 제일 처음에 하느님한테 달려들었습니다. 하느님 있으면 내려오라고.

    얼마나 못난 놈이었으면, 하느님, 부처님 다 내려오라고 했습니다.

    세상을 이따위로 만들어 놓고, 지금 당신들이 있다는 게 말이 됩니까?

    있으면 당장 내려와 갖고 나한테 벌을 줘라. 스승님은 자연에 죽으러 들어가서 그렇게 싸우면서 공부한 사람입니다.

    나만큼 달려든 놈이 없다고 그러더라고요. 죽어 가면서 달려드는 놈. 지독한 놈이 그때 공부하러 들어온 것입니다.

    그래서 철저하게 나를 점검해 가면서 자연을 파해치고, 헤쳐 가면서 공부한 사람이니까,

    아마 내 말 들어도 될 겁니다. 스승님이 대신 많이 달려들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같이 나누어 가지고, 이걸 풀어서 그렇게 갑시다.

    이제 하느님한테 달려들지 마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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